5.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JESUS, THE ONLY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이 글은 E. W.
KENYON 목사님의 책: “하나님과 그분의 가족 ”을 번역한 것입니다.
This is a translation of Pastor E. W. Kenyon's book: "GOD AND HIS FAMILY"
이 책의 영어 원본은 이 한글 번역본의 맨 마지막에 놓여 있습니다. 영어 독자들은 참고바랍니다.
The
English version of this book is at the end of this
Korean translation. English readers, please read it:
<안내>: 이 책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그분의 성품,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대적자인 사탄 마귀의 존재와 그의 영향력, 인간의 타락과 죽음,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의 주목을 위해 이 글의 제목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딤전 2:5)로 변경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시면, 영적 세계에 관한 여러분의 기본 인식이 확립되고 영적 분별력을 얻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을 담대하게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의 시험과 공격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제가 이 책을 번역하였고 필요한 부분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보충 설명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꼭 여러 번 읽으시고 핵심 내용을 잘 파악하셔서 신앙생활에 활용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영진 목사)
<Note>: This
book explains God's creation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His character, the
existence and influence of Satan the Devil, the enemy of God and us humans, the
fall and death of humans, and, ultimately, the need for Jesus Christ, the
only mediator between God and humans. The author of the book is describing in
depth with spiritual insight. So, for the reader's attention, I have titled
this book to "Jesus, the Only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1 Timothy 2:5). If you
read this book, your basic understanding of the spiritual world will be
established and you will gain spiritual discernment. Furthermore, by boldly
using the name of Jesus, you will be able to overcome the temptations and
attacks of our adversary, Satan the Devil. For that purpose, I have translated
this book and provided supplementary explanations in parentheses where
necessary to aid your understanding. I pray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you will read this book many times, understand the core contents,
and use them in your life of faith. (Pastor Young J. Park)
목차:
<서론>
1장. 창조에
대한 이유 (THE REASON FOR CREATION)
2장. 사람의
반역 (MAN'S TREASON)
3장. 죽음의 권세 or 통치 (THE DOMINION OF DEATH)
4장. 사탄 (SATAN)
5장. 지옥 (HELL)
6장. 사람의
중보자의 필요성 (MAN'S NEED OF A MEDIATOR)
7장. 예수님의
성육신 또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THE INCARNATION OR THE HUMANITY AND
DEITY OF JESUS)
서론:
First Words
이 시대의 생각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지식인들을 말함)은 (정통) 교단의 신조들(DENOMINATIONAL CREEDS)안에 제시된 성경의 정통적 해석을 반대하고 대적해 왔습니다(비고: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기독교의 정통 신조들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했는데, 요즘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그것들을 반대해 왔다는 말임). 불안의 영(SPIRIT OF UNREST)이 기독교계의 마음(HEART)을 사로잡았습니다. 즉, 믿음(FAITH)의 오래된 랜드마크 중 많은 부분이 현대 비평(modern Criticism)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수백만의 믿음이 분산되었습니다. 교회는 그 시대의 상상력에 관하여 생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목회는 불신(UNBELIEF)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학 사상의 모든 간판(주요 교리들)에 대해 심문(반문)의 요지를 발견했습니다(올바른 교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말임). 우리의 큰 교단 공동체의 어떤 곳에서는 교리의 일관성(coherence of doctrine)이 거의 없습니다(그들이 기존의 올바른 교리들을 바꾸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교리들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말임). 우리는 답들을 요구하는 질문들에 직면해 있습니다(그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데 답하지 못한다는 말임. 왜냐하면, 스스로가 문제가 있기 때문임). 여기에 그 세상(the world), 하나의 우주(a universe), 하나의 인간 가족(a human family)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있습니까? 과학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비고: 세상과 우주와 인간의 전체 가족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질문을 하고 답을 발견해야만하는데 과학이나 이 세상 학문들은 그러한 중대한 질문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답하지도 못했다는 말임). 우리는 조사 초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그럴듯한) 과학, 철학 또는 신학 체계는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창조에 관한 이유"(WHY OF CREATION)의 오랜 문제에 대한 지적인 대답에 기초하지 않았습니다(창조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 철학, 혹은 신학 체계가 전혀 지적인 대답, 납득할 만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는 말임).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다음 페이지들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그 내용을) 읽는 사람들의 믿음이 강해질 것이고 그 지식이 막연한 추측을 대신하고, 힘이 약함을 대신할 것이라고 믿습니다(이 책은 이 세상의 학문과 지식과 신학에 의해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고, 또, 알 수 없었던, 인간의 창조의 기원인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임).
<하나님
아버지 사실>: The Father Fact
아버지 사실(the Father Fact)과 가족 사실(the Family Fact)은 성경의 가장 강력한 두가지 사실(two mightiest facts)입니다. 구속(REDEMPTION)의 계획은 이 이중적인 중심의 주변에서 움직입니다. 이 계시의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은 신학적인 고찰의 말(혹은 글)의 언어로 커버되어 왔습니다. 구속의 전체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족을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꿈입니다. 둘째, 죄 문제(Catastrophe: 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로부터의 구속입니다. 셋째, 그 꿈이 현실이 됩니다. 넷째, 그 가족의 집인 새 하늘과 새 땅(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입니다. 구속의 전체 계획은 위대하신 아버지의 마음(HEART), 즉, 그분의 열망과 분리(hunger and loneliness: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간절하신 긍휼의 마음과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스런 마음)에 대한 계시입니다. 이 엄청난 창조 드라마의 첫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꿈과 인간의 아름다운 집에 관한 그분의 청사진이었습니다. 장래의 남편에 관한 것은 없습니다(No prospective husband) - 아버지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분의 자녀인 인간이 생각(기대)하는 집(HOME: 가정)보다 더 열렬하게 집 둥지(Home-nest)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지구의 집(an earth-home)을 짓고 그것을 보물들(Treasures)과 함께 보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지구의 집)은, 오직 그분의 생각(MIND)만이 품을 수 있고 그분의 능력만이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지구를 완성하신 후 그는 우주 전체에 별과 해와 달과 놀라운 별자리를 두셨고 보이지 않는 세계(worlds)뿐만 아니라 보이는 세계 각각에 보이지 않는 중력(gravitation)의 끈으로 지구를 고정시키셨습니다. 각 별과 별자리는 그분의 능력의 말씀에 의해 그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으며, 각각은 그가 이동하는 것에 대해 표시된 일정한 경로를 갖고 있습니다. 각 별과 행성, 각 별자리와 그룹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집인 지구를 위해 수행할 각자의 고유한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람(man)을 그 자신으로부터 구원하고 그에게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presence)안에서 흠 없고 행복한 가족(family)을 제시하기 위한 사랑의 과정들(Love's processes)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사실>: The Family Fact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족, 즉, 아버지와 그분의 자녀들(Father and His children)입니다. 그것은 이런 점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조(CREED)도, 일련의 교리(Doctrines)도, 윤리의 몸(a body of Ethics)도 아닙니다. 신조는 그것(기독교)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법(LAWS)은 그것(기독교)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교리는 그것(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만들어졌고 세계의 최고의 윤리가 그것(기독교)의 제품이 되었습니다(이 세상의 최고의 윤리가 기독교로부터 나왔다는 말임). 그것들은 모두 기독교의 일부이며 위대한 가족 사실의 부분입니다. 기독교의 천재성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우주의 위대한 가족 하나님(the great Family God)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당신의 가족이 과학이 아닌 것보다도 더,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기독교)은 과학적 사실들에 근거합니다. 기독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기독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들(relationships)에 관한 계시(Revelation)입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신학(Theology)이 아닙니다. 그것(기독교)은 인간의 구속(redemption)과 하나님과의 연합(union)에 관한 그 실재(the reality)입니다.
<두
종류의 지식>: THE TWO KINDS OF KNOWLEDGE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한 광부(miner)는 자신의 주장이 기각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오두막을 지었었습니다. 그곳은 그에게 하나의 집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HEART)은 완전히 낙담했습니다. 모든 전망(prospect after prospect)이 그를 실망시켰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오두막 앞에 앉아 꽃들을 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곡괭이와 삽을 들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저 몇 분 동안 일했는데, 전체 부위에서 가장 풍부한 광맥 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그 위를 걸었었습니다(비고: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 금광맥이 있는 그 길 위를 걸었었지만, 무지하여 그 전에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었다는 말임). 우리가 말씀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발견 중 하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광부와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와 인류의 구속계획...)을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성경을 향하여 학계의 전체적인 합리주의적 태도를 풀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비고: 학계는 그들의 이성적인 태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믿지 못하고 비판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여기에서 나누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류의 구속계획으로 인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임). 우리는 그것이 성경 해석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신학교의 상당 부분의 배교 문제(the apostasy)를 해결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식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대조하거나 비교한 적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훌륭한 종합대학, 기술학교 및 단과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지식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오감(FIVE SENSES)을 통해 얻은 지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입니다. 오늘날 과학계, 교육계, 기계적인 세계가 가져왔던 모든 지식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 오감을 통해 왔다는 것은 인정된 사실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우주와 함께 가졌던 모든 접촉은, 그의 오감을 통해 그에게 왔습니다. 그는 그들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어떠한 지식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음 예를 통해 감각 지식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각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맹인은 어떤 색깔을 알 수 없었습니다(비고: 이 세상의 물질의 색깔들은 시각이 없으면 그것들을 전혀 볼 수 없고 우리에게 시력이 있어야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 영적인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시력으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귀먹은 사람은 소리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오감과 함께, 그것이 이 다섯 가지 채널을 통해 우리의 생각(MIND)에 떠오를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방대한 양의 지식은 실험(experimentation)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 몸(BODY)은 이 지식의 원천이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각 지식(SENSE KNOWLEDGE)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감각 인식(Sense Perception)을 통해 옵니다. 우리 몸은 실제로 실험실이되었습니다. 화학, 금속학, 기계학에 관한 방대한 지식은 인간의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얻어졌습니다. 오직 그들의 감각 인식(Perception)을 통해서 물질계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물질계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화학이나 생물학에서 그들의 실험을 통해서는 영(SPIRIT)이나 혼(SOUL)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그들이 자연적으로(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는지, 왜 그들에게 기적들은 불가능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물질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의 영역에도 위대한 실체들(realities: 실상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영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계시 지식은 우리를 기적의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이 계시로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한 아버지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접촉할 수 있었고, 우리가 그분을 알게된 물질 세계 안으로 그분을 모시고 갈 수 있습니다(계시지식으로 인해 우리는 물질 세계에서도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다는 말임). 감각 지식은 하나님을 알 수도, 찾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영역에서 그들(거듭나지 못하여, 감각지식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그분(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당신은, 거듭나지 않은(HAS NOT BEEN Born Again) 사람이 성경을 설명할 수 없고 성경의 영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직 거듭남(the New Birth: 새로운 영적 출생)에 의해서 그의 생각(mind)이 조명받아온(illuminated)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know God)수 있거나 그분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결코 거듭나지 않은 유명한 학자들의 성경 비판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거듭나지 않은 학자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기존의 신조들을 부인한 것을 우리가 절대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임). 이들 중 일부는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정직성이나 학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감각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비고: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러나, 계시지식을 따르지 않고 감각 지식을 따라 했기 때문에 일을 하고도 큰 문제를 만들었으므로 비판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임). 우리는 예술의 위대한 걸작 중 하나를 해석하려는 맹인을 비판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윈(Darwin) 박사가 우리에게 다윈의 진화론(Hypothesis of Evolution)을 제시한 이유를 설명합니다(다윈은 진화론을 만들었지만, 영적 맹인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중대한 오류를 저질렀다는 말임). 감각 지식은 제한적입니다. 자연인(Natural man)은 생명의 기원, 물질의 기원, 사람의 기원, 동물계의 기원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창조물(피조물)이 어떻게 존재로 오게 되었는지(생겨났는지)(how creation came into being)에 관해 전혀 모릅니다. 그(다윈)는 (창조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추측합니다(guess). 진화(Evolution)는 대부분 추측들(guesses)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계시 지식을 갖고 있는 거듭난 사람들)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how all these came into being)에 관하여 하나님의 선언(declaration)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각지식(Sense Knowledge)은 그것을 거부하고, 우리는 그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비고: 감각 지식을 따르는 자들이 계시 지식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말임). 우리는 이제 감각 지식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완전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14절에 이것이 절정에 이릅니다: (14절) “육에 속한 사람(the natural man)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은 그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 지각(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그(육에 속한 사람)는 물질적인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모든 것이 그의 중추 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와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및 후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각은 육체적인 몸(the physical body)에 속하며 물질과만 접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적으로 분별되는 것만을 압니다. 그(육에 속한 사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창조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VOLTAIRE(볼테어: 기독교 비평가)가 말했듯이 그는 별을 연구할 수 있었지만 그 자신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 자신의 수준에서 만나주셨고, 그의 오감으로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계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12, 13은,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the spirit)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우리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그 영(the spirit)이 가르친 것으로 하니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비고: 세상의 영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거듭나지 않은 인간의 감각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영을 주시고, 성령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임. 그래서, 영적인 것들은 결코 사람의 감각지식이나 지혜가 가르치는 말들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이 가르치는 말씀들 or 계시들에 의해서만 분별될 수 있다는 말임). 이것은 우리에게, 사람이 그의 시각으로 보고 그의 청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들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들과 목적들에 관한 계시(revelation)를 사람에게 주어오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계시가 없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까?” 이 책의 후반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영의 존재(a spirit being)로 창조하셨고, 그에게 그 영의 집(the home of the spirit)을 위해 몸(body)을 주셨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몸(PHYSICAL BODY)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집(home: 거주지)이 될 그 외부 세계와 접촉해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관한 이 지식은 그의 오감의 매개체를 통해 그에게 와야만 했습니다. 그 신경계(nervous system)의 목적은 결코 하나님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영(spirit)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을 때(when man died spiritually), 즉,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을(ALIENATED) 때 그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없이 남겨졌습니다(첫사람 아담의 타락이후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그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남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된다는 말임). 그때,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을 얻은 그 매개체의 수준에서 인간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비고: 사람의 영이 죽은 이래로, 사람은 구조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결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인 배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그가 그 계시를 들을 때 그의 영의 거듭남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임). 하나님은 이것을 행해오셨고 이 계시(REVELATION)는 우리에게 성경(the Bible)으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인, 즉, 육체적인 사람, 즉, 단지 감각 지식만을 가진 사람은, 이 하나님의 계시(성경)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가 영적인 것들을 판단할 수 있기 전에, 재창조되어야(RE-CREATED: 그 영이 거듭나야)만 하고, 그의 생각(MIND)은 조명을 받아야만(ILLUMINATED: 조명되어야만) 합니다(참고: 초기 기독교 철학자 어거스틴(354~430)은 우리의 생각thought에서 하나님의 조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각mind은 그 자체가 외부로부터 빛에 의해 깨닫게 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생각이 진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을 향하여 새로운 무신론적 태도에 의해 두려워할(terrified) 필요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모든 현대 과학자들은 그들의 글에서 하나님에 관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각 지식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각 지식 사람들에게 계시의 필요성과 이 계시(REVELATION)안에 드러나게 된 사실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과학자들과 과학적인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온 현상이 더 많을 수록, 내가 암시한 것에 대한 진리들이 더욱 영광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려지지 않은 시대들을 통해, 사람의 출현(ADVENT)을 위해 준비함에 있어서, 스스로 분주하셨다는 것과; 그 사람이, 그분의 노력의 큰 목표, 즉, 이 행성에 대한 그분의 창조적인 생각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는 것과(하나님의 창조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말임); 이 모든 장기간의 준비는 단지 수명이 짧고 낮게 계획된 동물의 존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그 창조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영원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임); 또,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그리고 무가치하게 완성될 수 없었고, 그가 수세기 동안 그렇게 오래 기다려왔고 확실히 왕관을 쓴 것은, 그(사람)가 단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사람은 죄로 인해 한번은 죽게 되었지만, 사람의 창조는 죽음을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임)." - W. W. KINSLEY.
1장. 창조에
대한 이유
창조(CREATION)에 대한 이유는 그 디자이너의 전능한 손(the Designer's Master Hand)을 보여줍니다. 맹목적 우연(Blind Chance)은 그것의 저자가 아닙니다(비고: 우연히 발생된 일은 그 전능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 즉, 우연히 생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존재하게 된 모든 것은 다 전능자 하나님에 의해 기인되었다는 말임, 단, 창조된 후에, 악하게 변질된 것은 제외). 광물 왕국의 신비를 탐험하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가장 낮은 것에서 가장 높은 것까지, 세심하게 고안된 디자인의 표시가 모든 곳에서 당신을 마주합니다. 우연(Chance)에게 남겨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창조는 고정된 법칙의 철의 손(IRON HAND)으로 다스려져 왔습니다. 현미경은 가장 미세한 형태의 생명체에서도 이것을 드러냅니다. 가장 낮은 생식 세포에서 가장 높은 형태의 창조물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법칙이 적용됩니다. 지적인(intelligent) 목적이 모든 것에 퍼져 있습니다. 창조의 모든 단계에는 거대한 초점 목표(grand Focal objective)가 있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으신 그분은 그것위에 마지막 손질을 하신 분과 같이 동일한 계획과 목적, 동일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창조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과학은 이곳(창조)에서 침묵을 지켰지만 이곳이 과학의 첫번째 탐사선을 띄워야 했던 곳입니다. "창조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우주론(Cosmogony)의 개요(SCHEME)는 있을 수 없습니다(우주론은 반드시 창조를 설명해야 한다는 말임). 피조물이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설계하지 않은 우연(CHANCE)의 자식(산물)이라면, 우연은 기적을 행하는 자이고 우리의 숭배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만일 그렇다면 그 우연은 하나님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말임). 인간 노력의 어떤 부서에서도 지성소(HOLY OF HOLIES: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장소)를 인식하지 않는 철학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이 홀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습니다(철학은 하나님의 창조의 설명에 있어서 무능력했다는 말임). 철학의 목소리는 이 토론(DEBATE)에서 한 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철학은 아무 말도 못했다는 말임). 시인만이 그의 거문고를 이 고상한 주제에 맞추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어머니이자 모든 철학의 영감(inspiration)인 신학(theology)은 아직까지 창조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신학은 기초 없이 강력한 상부 구조를 세웠습니다(신학이 얼마나 기초가 없이 세워졌는가 라는 말).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의 자유에 대해 유창하게 변론했지만 그러나, 여기서는(창조에 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학자들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PERSONAL DEALINGS WITH GOD)에 있어서 보다, 추상적인(abstract) 신학에서 더 많은 기쁨을 찾았고, 하나님의 지식(divine knowledge: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어서 보다,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더 많은 기쁨(joy)을 찾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보다, 사람들의 의견들 안에서 더 많은 쾌락(pleasure)을 찾았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신학은 어떤 것도, 아직 한 세대를 살아남을(survive a generation) 교과서를 쓸 수 없었습니다(비고: 그것들이 진리가 아님이 밝혀졌기 때문에 짧은 기간안에 수정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폐기되었다는 말임). 우리는, 신학(THEOLOGY)은 시간 제한(time limited)이 있지만, 진리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아무도 구구단을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결코 수정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들은 시대에 따라 수정됩니다(신학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말함). 창세기의 처음 세개의 장(창세기 1-3장: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장들)을 보고 던져졌던 모든 공격들(assaults)과 조소(ridicule)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전히 창조(Creation)를 위해 유일하게 지성적인 생각을 만족시키는 이유로서 서 있습니다(they still stand as the only intelligent mind-satisfying reason for Creation). 우리가 성경의 그 부분(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장들)이, 지구가, 어둡고 무한한 공간을 통해 그들의 강력한 궤도안에서 회전하는 모든 천체들에 대한 이유라고 선언하는 것을 먼저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비고: 지구는 모든 천체들의 이유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임).
<창세기의
역사>:
GENESIS HISTORY
창세기는 우리의 창조의 신학을 완전히 재구성하도록 강요합니다. 창세기 1: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게 하라 하였더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날이니라." 당신은 이 진술에서 지구(the Earth)가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에 의해 이미 창조되었고 그것의 자리에 붙잡혀 있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비고: 창세기 저자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13절에서 지구가 창조되었슴을 먼저 선포한 후에, 14절이후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와 행성들의 창조를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봄). 이제 그분은, 이 지구를 섬기기 위해(to minister), 낮(the days)과 밤(nights)을 나누기 위해, 우리에게 징조(signs)와 절기(seasons), 일자(days)와 연도(years)를 주시기 위해, 궁창(firmament)의 각각의 위치에 태양, 달, 별, 행성(planets)을 배치하기 시작합니다. 이 성경으로부터 지구가 우주(the Universe)에 대한 이유(the reason)인 것처럼 보입니다. 최고의 천문학자들로부터 우리가 아는 한, 우리의 지구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있는 유일한 행성(planet)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경에서 인용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하시고 지구 위에 빛을 비추게 하라 하시고." 우리는 대양(OCEANS)과 바다(SEAS)의 조수(tides)가 천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더위와 추위, 가뭄과 폭풍이 행성의 영향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특정 행성들(planets)의 위치와 영향에 의해서 이 대륙(this continent: 지구를 말함) 위의 특정 지역에 대한 폭풍(storms: 폭우 or 폭설)이 예측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증된(ASSURED) 과학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진은 몇 년 전에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정 행성들은, 경련(convulsion)을 일으킬 지구의 표면의 특정 지점 위에 한 시간 동안 그들의 영향력을 집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성의 위치들(planetary positions)에 관한 확실한 지식에 의해 몇 달 전에 서리와 열파(frosts and heat waves)가 예측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론에서 우리는, 행성들이 우리에게 계절을 주고, 징조가 되고, 항상 지구를 섬기는 지속적인 동반자들이자 종들이 되기 위해 하늘들 안에 배치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From these deductions we see clearly that the planets were placed in the heavens to give us seasons, to be signs, to be the continual companions and servants, always ministering to the Earth). 다시 한번 우리는, 이것이, 지구(the Earth)가 우리가 하늘들(the heavens)이라고 부르는, 그 거대한 별이 반짝이는 우주(great star spangled universe)에 대한 이유(the reason)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하길 원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느 날 그의 아들과 함께 천체(the heavenly bodies)가 지구 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하던 한 저명한 천문학자(astronomer)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나는 특정 시점(times)에 지구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telescope)의 도달 범위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물체(body)에 의해 그것(지구)의 궤도(orbit) 또는 경로(path)에서 들어올려진 것(lifted out)을 알아차렸다. 만약 그들이 더 큰 망원경을 만든다면, 나는 네가 우리의 이 행성(지구)에 그토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가서 하늘들(the heavens)을 조사하라." 그 거대한 릭 천문대(the great Lick Observatory)가 강력한 망원경으로 장착되었을 때, 이 아들은 바다와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했고, 어느 맑은 밤 하늘의 어두운 공간을 향해 그 거대한 망원경을 돌렸는데, 거기에서 이 보여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 그의 강력한 손을 뻗어 지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잠시 바라보고 있자 거기에서 갑자기 하나의 작은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변방에서 멀리 떨어진 거대한 궤도 안에서 흔들리는(swinging) 하나의 별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지구에 이상하게 영향을 미쳤었던 그 행성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먼 별보다 수백만 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거대한 궤도를 휩쓰는 이 거대한 별은 몇 년마다 정기적으로 우리의 행성(지구)에 충분히 가까이 왔고, 그 결과로, 그것은 측정되지 않은 공간을 통해 강력한 중력의 손에 닿아 우리의 작은 지구를 잡고 그것을 그것의 궤도 밖으로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바다 위의 배는 조타 장치의 미세한 접촉에 반응하듯이 우리의 지구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보초(sentinel)의 접촉에 반응하고 재빨리 그의 경로를 벗어납니다. 그런 다음 그 행성의 손아귀가 느슨해지면(loose) 그의 원래의 경로로 돌아가 리드미컬하게 오고 갑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확립합니다: 광대한 우주 전체에는 행성이나,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 있는데, 우리의 이 작은 행성(지구를 말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there is neither planet, nor sun, nor moon, nor star in all the vast universe but has its influence upon this little planet of ours). 우리의 이 지구(그것이 우주의 중심이자 이유입니다)가 너무 작아서 그것들의 일천개가 태양 안에서 긿을 잃어버릴(lost)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그 마음을 떨리게(thrill) 하는가!(비고: 우리의 지구는 다른 행성들에 비해 너무 크기가 작아서 태양 안에서 쉽게 긿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너무 두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라는 말임). (그러나) 오늘밤 우리의 이 오래된 지구(old Earth: 다른 행성들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름)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미지의 행성들의 품(the embrace)에 안전하게 붙잡혀 있습니다. 하늘들은 오늘 밤 지구의 유일하게 완벽한 시계(timepiece)입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시계(Watch or Clock)는 우리에게 완벽한 시간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별들의 경로를 아는 사람은, 모든 별 또는 태양, 우리의 행성(지구)이 계획된 시간에 그 알려지지 않은(unpathed) 거대한 공간(space)에서 특정 지점(a certain given point)을 통과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별은 수천 년 동안 보여지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의 예정된 시간보다 1초 앞도 1초도 뒤처지지 않고 하늘들의 교차로들(the cross-roads)에 나타날 것입니다. 오! 건축가의 놀라움, 창조주의 경이로움, 우리의 이 위대한 우주를 유지하시는 분의 능력이여!
<지구에
대한 이유>: THE REASON FOR THE EARTH
지구가 별이 떠있는 하늘들의 이유라면 지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벽별들이 외로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첫 찬가를 부르기 전에,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첫 빛줄기가 어두운 궁창을 통과하기 전에,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HEART)은 깊고 강력하며 영원한 갈망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원초적인 열정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그 아버지의 마음(HEART)은 아들들과 딸들을 그리워하셨습니다. 이 간절한 열정이 구체화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사람(His Man)을 위해 우주를 계획하셨고, 그 우주의 심장(the heart)에 하나의 집을 목표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시간은 전혀 없습니다(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는 말임). 시간은 낮과 밤, 태양과 달에 속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낮이나 밤이나 해의 방해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이 이 거대한 우주의 기초를 놓았을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그의 사람(HIS MAN)의 집이 되도록 그것을 목표했습니다. 그곳은, 사람의 출생지, 사람의 기쁨의 동산, 그리고,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배우게 될, 사람의 대학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사랑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자기의 사랑을 베푸시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말임).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은 그의 사람(HIS MAN)을 위하여 모든 종류의 부(WEALTH)의 보물들(TREASURES)을 쌓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철, 구리, 은, 금을 가지고, 또, 그의 사람(HIS MAN)의 손길(the touch)에 반응할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금속, 화학 물질 및 자원을 가지고 지구의 가슴(Earth’s bosom)을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산, 계곡, 협곡, 고원, 평원, 아름다운 시냇물과 거센 강, 그리고 그의 사람(His Man)의 마음(heart)을 기쁨으로 감동시켰던 많은 색깔의 꽃들이 섞인 녹색 옷으로 지구 표면을 덮으셨습니다. 산비탈(mountain sides)은 거대한 숲으로 뒤덮여 있고 그 나무들은 지저귀는 새들과 윙윙거리는 곤충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우아한 날개는 온화한 바람에 맞서 펄럭이고 그의 사람(HIS MAN)을 위해 맞는 멜로디를 만듭니다. 과일과 채소는 그의 사람(HIS MAN)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아버지 마음의 사랑을 자연의 언어로 말하면서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아버지 하나님이 그의 사람(HIS MAN)을 위해 가지신 위대한 꿈, 마음의 계획을 해석합니다. 그것 근처에서, 당신은, 그 건축가(the Architect: 하나님)는 인간이 지구 표면의 어느 부분들을 나눌지(segregate)에 관하여 알고 있었고 그가 거기에 그의 큰 매장량의 구리, 철광석, 석탄, 석회석 및 모든 다른 천연 자원과 화학 물질들을 두었습니다. 그것들은 지구 위에 많은 인구의 예술과 기계학과 과학에 필요합니다. 그 근처에서 당신은, 가장 큰 매장량의 화학물질들과 금속들과, 광물들과 오일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는 그것들이 인간의 필요를 위해 준비될 수 있도록 그것들을 그룹화하셨습니다(grouped: 여러 그룹으로 나누었다는 말임). 우연(CHANCE)은 여기에서 지배하지 않았습니다(여기서 우연하게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임). 백금과 금이 철만큼 풍부했고 철(iron)이 금(gold)만큼 부족했다면 기계적인 시대(mechanical age)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지구를 묶고 나라들을 함께 묶는 철 레일들(철도들)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강력한 모걸 엔진(Mogul: 트랙터 엔진)은 결코 금이나 구리로 만들어 질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필요와 기쁨의 그 위대한 건축가는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동안에 인간의 필요를 알았고, 창조의 경이로운 계획에서 이러한 필요들이 충족되었습니다.
<동물의
세계>:
ANIMAL KINGDOM
동물 창조에 있어서 오늘날 약 25가지의 가축(domestic animals)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개와 집 고양이가 이전에는 야생이었는데 단순히 길들여졌다(domesticated)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자연(nature)은 이를 반박합니다. 북극에서 적도까지 그리고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인간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dog)가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아직까지 우리의 가축(domestics: 애완동물을 포함)을 대신할 수 있는 야생 동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개가 늑대과에 속한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고 그것이 길들여진 개가 되어, 경비원, 그의 자녀의 동반자, 혹은 농장이나 가정의 일상적인 동료(daily associate)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그(늑대)를 20세대에 걸쳐 키울 수 있지만 그(늑대)는 여전히 늑대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우리 인간의 충성스런 친구(개를 말함)로 하여금 20세대 동안 숲(forest) 안에서 야생으로 살도록(go wild) 하고, 그 다음, 그(개)를 잡아 당신의 집으로 데려가면 일주일 안에 그(개)는 당신을 위해 그의 목숨을 내려 놓을 당신의 종이고 친구이며 지팡이입니다(개는 늑대와 달리, 아무리 오랫동안 야생에 방치해 놓아도 사람에 의해 곧장 길들여지는 충성스런 동물임을 말하고 있슴). 개(dog)는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에 의해 사람의 충성스런 종이고 동반자이고 연인(lover)이 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우연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말임). 우리의 일반적인 집 고양이는 가족들의 친구이고 어린이들과 어린 시절의 친구이고, 나이 든 사람(the aged)의 애완 동물(pet)이 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지혜로운 건축의 대가(Master Builder)가 말(horse)을 만드셨을 때, 그는 말을 종으로서 그의 사람(His Man)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짐을 나르는 짐승이 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했습니다. 그 건축가는 말의 입안에서 이빨이 자라지 않는 곳을 남겨 두어 말이 비트(Bit: 사람이 말을 조종하기 위해 말의 입 안쪽에 물게 해서 양쪽에 끈을 연결하는데 사용하는 마구의 한가지 도구)를 불편함 없이 잡을 수 있게 함으로써 말이 여전히 그 입안에서 그 비트가 있는채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일, 소가 하이에나나 사자와 같은 사나운 성질을 받았다면, 소는 가축용(domestic purposes)으로는 전혀 부적합했을 것입니다. 만일, 개가 늑대나 여우의 성질(disposition)을 받았거나 우리의 고양이가 호랑이의 성질을 받았다면, 그들은 우리 집을 위해 안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위험해서 우리들의 집에서 키우지 못하게 되었을 거라는 말임). 만일, 말이 얼룩말의 성질을 받았다면 말은 결코 사람의 짐을 나르는 짐승이 될 수 없었고 또 분리될 수 없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NO!), 사람을 창조하신 분은 사람이, 사랑의 손길에 반응할 가축들, 인간과의 교제를 갈망하고 그리워하며 인간의 목소리에 기꺼이 순종할 동물들(animals)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면의 공간을 가졌다면 지적인 창조주의 현명한 공급을 보여주는 다른 가축들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식물
세계>:
VEGETABLE KINGDOM
우리가
인간을
위해
창조된
매우
다양한
나무들(woods)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유칼립투스과(the
Eucalyptus family) 하나에만 183종(varieties)이
있습니다. 떡갈나무, 한숨
쉬는
소나무, 웃는
단풍나무, 섬세한
버드나무, 외로운
포플러를
포함해서
이들
나무들은
인류의
발전(development)과
확장(expansion)에
있어서
필요(need)와 바램(want)을 채우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식물
세계에는 10만개가
넘게
분류된
품종(classified
varieties)이 있습니다. 50만
마리가
넘는
곤충들(insects)이
이
수십만
종의
식물을
먹고
삽니다. 전체
식물
세계의
모든
식물, 관목, 채소, 과일
또는
나무(tree)는
인간의
사용을
위해
설계되었고
계획되었으며, 인간이
지적으로
성장하고
식물
세계의
신비를
탐구할
때, 그는
그곳에서
이
위대한
기계적인
시대에서
지속적으로
오고
있는
수천
가지
요구들(needs)에
대한
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유>: THE REASON FOR MAN
만일 지구(the Earth)가 하늘들에 대한 이유이고 사람이 지구(the Earth)에 대한 이유라면, 사람에 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은 하나뿐이고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 위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그 유일한 마음(the lonely heart)입니다(비고: 그것은 외로운 마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lonely heart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을 향하신 온전하고 유일한 사랑의 마음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땅 위의 가족이든지 하늘의 가족이든지 모든 부성(Fatherhood)은 하나님 안에서 머리를 듭니다(heads up). 하나님의 마음(heart)은 자녀들을 갈망했고(yearned), 아들들과 딸들을 갈망했습니다(craved). 하나님은 종들로서 그를 섬기는(minister) 천사들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들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의 사람(His Man)을 위해서 지구와 하늘들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사랑의 놀라운 인내를 가지고 오랜 세월을 소비하셨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가장 놀라운 존재(wonderful Being)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을 그토록 원했고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를 위해 수백만 년을 소비했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heart)과 그분의 꿈과 그분의 영원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만 합니까!(사람이 하나님 다음으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임)
<질문>: Questions
1. 창조(Creation)는
한 디자이너를
어떻게
드러냅니까?;
2. 어떤
성경
구절이
지구가
천체의 우주(the heavenly universe)에
대한
이유임을
알려
줍니까?;
3. 보물들을
가진
지구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4. 가축들(domestic
animals)은 인간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사려 깊은 공급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5. 사람에
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Man)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왔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들의 삶을 사람의 기쁨을 위해 유지합니다. 즉, 지구는 그것의 과일들, 연료들, 광물들의 저장(stores)을 그의 기계류(machinery)에 양보합니다. 그는 강들과 태양으로부터 힘(power: 전력)을 모읍니다. 그는 거의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생각들(thoughts)을 나눕니다(communicate). 그는 그의 망원경과 분광기(spectroscope)로 우주를 탐험하고 새들의 가장 빠른 속도를 초과하는 속도로 공기, 땅(land), 물 위를 타고 다닙니다(ride)." (심지어 그의 타락하고 폐위된 지위 안에서도 인간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그의 본래의 지위의 흔적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2장. 인간의
반역: MAN'S
TREASON
현재
사람의
상태는
정상입니까? 우리는
인간을
위한
아버지의
이상과
계획
아래
살고
있습니까?(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계획과 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 죄, 병,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까?
(그것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가 아님에도 버젓이 존재하기에 문제가 있슴을 말하는 것임). 하나님이
그것들의
저자입니까?
?(그렇지 않음을 반어적으로 묻고 있슴). 증오(hatred: 미움)와, 질투(jealousy)와, 살인(murder)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까?
(그렇지 않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고 있슴). 지구를
휩쓰는
비정상적인
동족상잔의
전쟁들(unnatural
fratricidal wars)은 하나님의 원래 목적의 일부입니까? (그렇지 않음을 반어적으로 말하는 것임). 하나님은 본래, 죄도 없고,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고, 미움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계획을 갖지 않으셨습니까? (Did
God have an original plan without sin, without pain, without grief, without
hate, and without death?) (하나님은 본래 그와 같이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는데 인간의 반역으로 죄와 고통과 미움과 죽음과 같은 큰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슴)
<사람의
본성(성질)>: NATURE OF MAN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heart)이 창조에 대한 이유일 뿐만 아니라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Man: 사람)에 대한 이유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가지고 우리를 축복하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앞에서 우리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랑 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도록 우리를 미리 정하셨으니" (에베소서 1:3-5). 사람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아들의 신분(sonship)으로 구별되었습니다(marked out). 사랑(Love)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에게 양자로 구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창세 전에 가족을 계획하셨고, 인간은 그 목적에 대한 답입니다. 인간은 태초에(in the beginning) 어떤 종류의 존재(being)였습니까? 창세기 1장에서는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신의 모양(likeness)을 따라 하나님 자신의 형상(image)으로 창조되었다” 고 선언합니다(창 1:26 참조). "그분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본래의(타락이전 상태의, 그 최초의) 사람(the original Man)에 관해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은 그를 그분의 동반자(companion)이자 영원한 동료(eternal associate: 동역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사람)는 비록 하나의 육체적인 몸(a physical body)안에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의 영 존재(a spirit being: 영의 개체)입니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그의 마음(heart) 안에 영원을 두셨으니" (God set eternity in his heart); (비고: 사람이 영원을 사모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을 주셨슴을 반증함). 우리는 그가 창조주의 동반자가 되도록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그는, 한 주인(a Master)의 종(servant)의 자리를 채우거나 그 주인에 대한 가축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영원하신 아버지의 한 아들이고 동반자이고, 동역자(associate)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태초에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사람의
종류>: KIND
OF MAN
감각 지식으로부터 나왔던, 다윈(Darwin)의 진화론(evolution)의 가설(hypothesis)은 시대에 걸쳐 불신앙(unbelief)과 운명론(fatalism)이라는 먹구름을 던졌고, 진리(Truth)가 이해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의 조사를 실행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좁은 한계 안에서 우리가 진화론의 토의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명에는 세 종류가 있고 이 세 종류는 지나갈 수 없는 틈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의 최신 격언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즉, 식물의 생명, 동물의 생명, 그리고 인간의 생명(비고: 각각의 서로 다른 종류의 생명체들은 결코 서로간에 섞일 수 없고 영원토록 구분되어 창조되었기에 다윈의 진화론은 가설이고 허구라는 말임). 식물은 결코 동물에게 건너갈 수 없고, 동물은 결코 인간에게 건너갈 수 없습니다. 즉, 식물의 생명, 동물의 생명, 인간의 생명, 식물은 결코 동물에게 갈 수 없고, 동물은 결코 인간에게 건너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감각의 영역에서 탄생한 다윈의 가설을 영원히 파괴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야생 상태에서는 같은 종의 동물조차 결코 서로 이종 교배(cross)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의를 환기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품종들은 결코 섞이지 않았습니다. 화석이나 삼림 요새의 어디에서도, 곰과 사슴사이에서, 사슴과 호랑이 사이에서, 사자와 하이에나 사이에서, 까마귀와 울새 사이에서, 매와 비둘기 사이에서, 말과 코끼리 사이에서 단 하나의 이종 교배(cross: 잡종)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fter a most careful and searching examination of fossils in all stages in animal history this statement of Genesis remains true, every animal "after its own kind." 동물의 역사 안에서 모든 단계에서 화석의 가장 주의 깊고 면밀한 조사 후에, 창세기의 이 진술은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즉, 모든 동물은 "그 자체의 종류대로" 남아 있습니다. 회의론자들(the skeptic)은 모든 동물 역사에 있어서 가장 미세한 유기체로부터 가장 큰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들의 교배(cross)가 있었던 곳을 한 곳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에 의해서 같은 클래스(종류)에 머물렀습니다. 당신은, 거대한 석탄층 안에 박혀 있는 양치류(꽃이 없는 식물)를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오늘 시원한 숲 그늘에서 따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하 1100피트, 석탄층 아래 박혀있는 단풍잎(maple leaf)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단풍잎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변화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잔디밭에서 자라는 단풍잎과 같이 동일한 수의 점들과 동일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다 밑바닥에서 발견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생명체가 암석에서도 발견됩니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NO),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알고 있으며 야생 동물은 그 법칙들에 완전히 순종하며 살아갑니다(비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시대가 흘렀어도 그 각각의 품종이 결코 썩이거나 변하지 않았기에, 진화론은 허구라는 말임).
<인간, 창조의
면류관>: MAN,
THE CROWN OF CREATION
성경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가
전체
동물
창조물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그런 성격(character)으로부터 지적으로 하나의 마인드(mind: 지정의 기관)를 가졌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사람(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사람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19). 그
사람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모든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고, 주어진
그
이름은
그
짐승의
특성들과
성질(nature)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500,000마리 이상의 벌레들(bugs), 새들, 지렁이들(worms), 동물들, 물고기, 파충류들(reptiles)이
있고
그
사람이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가
유인원(Simian) 가족의
반쯤
발달된
잃어버린
연결
고리가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아닙니다!!(비고: 인간이 그토록 지혜로웠슴을 볼 때, 인간은 결단코 원숭이로부터 약간 더 진화된 존재인 유인원이 아니었슴이 확실하다는 말임: 다시 말해, 진화는 허구라는 말을 하는 것임). 그는
창조의
태(womb)에서
완전하게
왔고, 피조물에
대한
통치자가
되기에
적합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놀라운
능력(powers)의
지성(intellect)을
가지고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적합한
동반자로
만들었던
그
영적
용량(spiritual capacities)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비고: 사람은 태초에 창조되었을 때에 짐승들과 같이 어느정도의 혼과 몸만이 아니고, 짐승들보다는 훨씬 높은 지성을 가지고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을 닮은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임).
<인간의
지배권: 권세>: MAN'S DOMINION
다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8과 시편 8:3, 4에 묘사된 것처럼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그에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셨나이까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 구절에서 "천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은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낮게 만드셨고, 그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주의 손으로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에서 사람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았음을 주목하십시오. 창조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그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처럼 그는 하나님 같이 가깝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지배권을 주신 것을 당신은 주목하십시오. 그는 동물 창조물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창조의 법칙들도 다스렸습니다. 그는 그들의 진로 안에서 바로 옆에 있는 별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바로 아래의 통치자(under-ruler)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랑의 법칙을 제외하고는 존재나 법칙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그는 하나님과 그의 법칙 안에서 주요한 존재였다는 말임). 이것은 그 자체로 가장 놀라운 사실이지만 인간이 지배하려는 꿈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인간은 결코 종(subject)이나 노예가 되기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시대를 통해 내려오는 인간의 지배를 어렴풋이 봅니다. 모세는 홍해에게 말했을 때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갈라진 거대한 틈이 그의 앞에 열렸고, 그 벽은 양쪽으로 수백 피트 높이로 우뚝 솟았습니다. 그것은, 400만 명의 사람들이 가축과 소떼, 가족, 노예와 함께 저편에서 자유를 향해 쏟아져 나올 때까지 그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의 같은 목소리에 의해 물들이 여러 세대 동안 이교도 국가들을 뒤흔들었던 충돌과 함께 천둥치며 왔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요단강에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요단강은 주인의 음성에 응하여 승리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해와 달에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가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동안 그들은 몇시간이고 서있었습니다. 우리는 대담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fire)을 부르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세 동무가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졌으나 그들의 옷에는 탄 것도 없고 타는 냄새도 없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여러 시대를 거쳐 그 나사렛 사람(예수님을 말함)까지 조용히 내려가 그가 처음에 사람에게 주어진 것과 동일한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봅니다. 죽어야 할(mortal) 몸에서 자유로이 태어나신 예수님은 첫 사람과 같은 동일한 권세(Authority)와 통치권(Dominion)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고통받는 인류의 불구가 된 다리와 팔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바다의 물고기에 대해서, 들의 나무들에 대해서, 사탄에 대해서 이 권세(Authority)를 행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절대적인 주인(Master)이자 창조(Creation)의 군주로 다스렸습니다.
<사람의
성질(본성: 성품)>:
MAN'S NATURE: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그는
끝없는
인간
생명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계획되었습니다. 그는
불멸자(Immortal: 죽지 않는 자)도
필멸자(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필멸자(mortal)라는
단어는 "운명적으로
죽는
것" 또는 "사탄이
통치함"을
의미합니다. 불멸은
썩지
않고
죽지
않는, 필멸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는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죽음이
그를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결코
지치지
않을
만큼
회복의
힘을
가진
육체적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는
질병이나
죽음에
굴복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인간의
육체적
성질이
그
자체로 7년에
한
번씩
새로워진다는
생리의
법칙이
인간이
육체적으로
신선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비밀이었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예수님도
같은
종류의
육체적
몸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죄- 대속자가
되고
우리의
죄-성품이
그의
위에
놓여지기(laid
upon)까지 죽음은 그에 대해 지배력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필멸자(Mortal)가
되어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류에
속합니다. 그는
하나의
영원한
인격체(eternal
personality)입니다. 그가
죄를
짓기
전에
그는
모든
천사와
귀신들에
대해
지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그보다
더
크셨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존재보다도 그가 더 컸었다는 말임).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또
다른
놀라운
특징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시간
제한>: TIME
LIMIT
하나님은
사람에게
시간
제한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숙박
시설로
우리는
그것을
지배권(Dominion)의
임대(Lease)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지배권의
임대는
다니엘서와
마가복음에서 "이방인의
시대(the
age of the Gentiles)", 즉, 나라들(nations)의
시대, 또는
사람(Man)의
지배의
시대라고
불립니다. “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러 여기 오셨나이까." (마태복음 8:29).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누가복음 21:24).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타락한 인간인 "인류" (the "Human Race,"
fallen man)를 의미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로마서 11:25).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계 12:12). 이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귀신들이
그들에게
시간
제한이
있음을
알았다는
것을
봅니다. 그
기한을
이방인의
때라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탄에게
넘어가
버린, 사람의
본래의
주권시대를
의미합니다(사람에게 그 주권이 있었는데 그가 타락함으로 사탄에게 넘어갔슴). 우리는 오늘날 사탄이 타락한 사람을 통해 통치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리스(Lease)는 거의 끝났고 주 예수님이 오실 때 만료될 것입니다.
<인간의
책임>: MAN'S
RESPONSIBILITY: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자신이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온
인류를
단
한마디
말씀으로
창조하는
대신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로 나의 자녀들을 낳고 눈물로 양육하고(tear)가르치며 그들을 돌보게 하였느니라. 그들에게 나를 사랑하고 나의 마음의 열망에 응답하도록 가르치라." 그러므로
인간의
진짜
사업은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하나의
책임을
주는데, 그것은, 단지
영원에
의해서만
측정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인격체
자녀들을
낳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사시는
만큼
오랫동안
살
것입니다(사람이 하나님처럼 영원토록 살 것이라는 말임). 그때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의
관리인(the Custodian)입니다.
<인간의 죄의 성품: 본질>: NATURE OF MAN'S SIN:
이것은
갈보리(Calvary) 이래로, 모든
세대의
신학자들을
도전해
온
오래된
문제입니다. 인간의
본래의
범죄(original
transgression)의 성질(nature)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깨뜨려진
율법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당시에) 그
용어를
모세의
율법과
연관해서
이해할
만큼
주어진
율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아담의 타락시에는 모세의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원죄를 율법의 파기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임). 그렇다면
성육신(the
incarnation)과 갈보리의 고난들(sufferings)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죄였습니까?(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희생을 하게 했던 인간의 죄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 인간의
비참함의
대작(masterstroke
of misery)이라고 불릴 수 있는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이
그토록
광범위한
권세를
부여받았고, 하나님의
동반자가
될
만큼
뛰어난
지성을
가졌고, 하나님의
기쁨이나
슬픔을
그의
손
안에
가졌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제
우리는
그가
저질렀던
죄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큰
반역>: HIGH
TREASON:
아담의 범죄(transgression)는 큰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우주를 다스릴 법적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우주 전체에 걸친 이 지배권(Dominion: 통치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유산이었습니다. 아담은 이 법적 지배권을 하나님의 적, 마귀(사탄)의 손에 넘겼습니다. 이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큰 반역은 인간의 모든 시대 안에서 그렇게 생각되어 왔습니다(비고: 아담의 큰 반역으로 인해 인류도 반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 반역은 그냥 용서될 수 없는 큰 죄라는 말임. 그것은 너무나 큰 반역이기 때문임). 아담의 범죄는 절대적인 지식의 흰 빛안에서 저질러졌습니다(Adam's was committed in the white light of absolute knowledge: 그가 죄인 줄 모르고 범죄한 것이 아니라 알고도 범죄했다는 말임). 그는 마귀에 의해 속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끔찍한 범죄로 인도했던 단계들을 이해했습니다. 그의 아내 이브는 속아넘어갔지만, 그러나, 아담은 영원(Eternity)의 베네딕트 아놀드가 되었습니다(비고: 아담은 자신의 나라를 하나님의 대적 사탄에게 넘긴 사람이라는 말임).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요 여자가 속아 범죄하였느니라.” (디모데전서 2:13-14). 그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탄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상상할 수 없는 범죄의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반역의 결과>: THE EFFECT OF THE TREASON:
첫째,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관하여 방해(thwarting)였습니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분리(separation)였습니다. 셋째, 그것은 사탄에게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보편적 지배권(universal dominion)을 주었습니다. 넷째, 그것은, 인간(the Human)이 마귀(the Devil)에게 완전히 속박(bondage)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섯째, 그것은 동물과 식물 세계위에 끔찍한 저주(Curse)를 가져왔습니다. 지구의 표면이 새로워졌고 사람의 강림(man’s advent)을 위해 준비되었던 이래로 죽음은 없었으나, 지금은 황폐한 저주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휩씁니다. 모든 꽃과 열매는 그 위에 저주를 갖고 있습니다. 벌레(worms), 찔레(briars), 가시(thorns)가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는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의 제물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열매는 하나님의 제단에 놓기에 합당하지 않을 정도로 쓰라린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흉측하고 시들게 하는 저주는 온 땅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음(death)과 전염병(blight)은 이제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결과)은 더욱 침몰합니다. 창조는 사랑의 지배권(dominion: 지배력) 아래에서 계획되었습니다. 동물 전체가 사랑과 평화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두려움과 증오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체 동물 피조물이 새로운 성질(성품)을 받았습니다. 미움과 교활함과 두려움과 복수의 영이 바람의 숨결에 의해서처럼 그들 안으로 불어넣어졌습니다. 어린 양과 사자는 (이전에) 풀밭에서 함께 어울려 놀았었습니다; 갑자기 사자가 변합니다. 그는 사나워집니다. 사랑 외에는 아무 소리도 몰랐던 그의 목소리는 숲과 평원이 그의 끔찍한 전쟁의 부름으로 울려 퍼질 때까지 변했습니다. 공포는 소심한 자의 마음(heart)을 사로잡습니다. 인간의 끔찍한 범죄(crime)가 모든 동물 피조물에 의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갑자기 거대한 전쟁터로 바뀌었고, 오랜 세월 동안 고요한 숲(woods)과 개울(streams)과 사막(deserts)은 거대한 묘지(cemetery)가 되어왔습니다. 공포(fear)와 죽음이 매일 밤 그 그림자들을 드리웁니다.
<사람의
나라>: MAN'S
KINGDOM:
사람(Man)은 갑자기 필멸자(mortal: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가 됩니다. 사람은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되고, 사탄의 종(servant)이 됩니다. 그는 다시 태어납니다(born again). 그는 하나의 죄인 이상입니다(more than a sinner); 그는 죄(sin)입니다. 새로운 성품(Nature)이 그 안에 들어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이 원수, 마귀의 성품입니다. 하나의 유사한 성품이 마귀적이고 잔인하고 악의적인 동물의 세계안으로 불어넣어집니다. 사람의 영(spirit)은 변화를 겪습니다. 사람은 사탄의 성품, 즉, 영적 죽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는 영적으로 죽습니다(dies spiritually). 그는 갑자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됩니다; 그의 모든 성품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rebellion)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와 법적 신분을 상실합니다. 그는 그의 사랑을 잃고 증오와 복수를 받습니다; 그는 그의 믿음(faith)을 잃고 망설이고(hesitating) 머뭇거리고(halting) 걸려 넘어지는(stumbling) 불신앙(unbelief)을 받습니다. 그는 그의 안식(rest)과 평화(peace)와 기쁨(joy)을 잃습니다. 그는 동산에서 쫓겨나서, 피가 그 땅위에 떨어지는 피 흘림의 제물로 구원받지 아니하고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 나무(the Tree of Life), 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먹게 하는 그 쵸크(the choke: 선택권?)를 주셨습니다. 하나(생명나무)는 그를 하나님과 연합시켰을 것이고; 다른 하나(선악과)는 마귀와 연합시켰을 것입니다. 하나(생명나무)는 그에게 그의 몸을 위해 영생(Eternal Life)과 불멸(immortality)을 주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선악과)는 그의 몸을 위해 영적 죽음(spiritual death)과 필멸성(mortality)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privilege)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상실하고(forfeit)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아담의
판매할 법적
권리>: ADAM'S
LEGAL RIGHT TO SELL
아담은 자신의 지배권을 물물 교환할 법적 권리를 가졌습니까? 우리는 그가 그 도덕적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의문시할지라도, 예(YES)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답합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제거할 능력을 가졌다면 왜 하나님은 마귀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하나님은 사탄으로 하여금 땅을 다스리고 그토록 많은 불행을 야기하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아담은 분명히 이 지배권(dominion)과 권세(authority)를 그 적의 손에 넘길 수 있는 하나의 법적 권리(right)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사탄의 법적 지위(standing)와, 법적 권리(right)와 권세(authority)를 인정할 의무가 있으셨고, 이 근거로, 그리고, 이것만으로 우리는 구속 계획의 법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지배: 통치: 권세>: SATAN'S DOMINION:
우리는 구속의 계획에서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인, 사탄의 창조물에 대한 지배권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이 권세를 얻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그것에 관한 몇가지 사실에 주목해 봅시다.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지만 결코 사탄을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셨었던 그 권세(Authority)를 합법적으로 그(사탄)에게 양도했습니다. 이 권세는 시간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공의롭지 않으셨다면 그때 그분은 사탄을 쫓아냈을 것이고 인간을 벌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분의 은총(Grace)은 완전한 정의(Justice: 공의)에 기초하여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인류의 구속(Redemption)을 위한 공급을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마귀가 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에게 떡이 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마귀가 그분을 데리고 올라가 순식간에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로마의 독수리, 로마의 세계 파워의 휘장을 가리킴으로써 이것을 했을 것입니다. 마귀가 이르되, "내가 이 모든 권세(authority)와 그 영광(glory)을 네게 주리라 이는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니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 앞에서 경배하면 모두 네것이 될 것이다." 이제 사탄이 예수님께 와서,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권세와 영광을 자기에게 넘겨주었으니 그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만일) 마귀가 예수님에게 거짓말을 했고 예수님이 그가 거짓말한 것을 알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사람일 뿐 우리가 믿었던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거짓말을 했고 예수님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아셨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참된 유혹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참되다고 믿으며 그것은 진실성 있는 유혹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사탄이 인류(the human race)의 왕국에 대한 권세(authority)와 통치권(dominion)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원하는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그것을) 양도할 수 있는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숙고하기 끔직한 사실입니다. 인류는 마귀의 통치(dominion)아래 있었고 그의 통치는 합법적인 통치이며 하나님은 소위 아담의 임대 기간(the Adamic lease)이 만료될 때까지 그것을 깨뜨리실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할 때 사탄의 권세를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4:30에서 그를 "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여기서 사탄은 인류와 세상 왕국의 정치적 우두머리로 인식됩니다. 이 점을 옹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고린도후서 4:3-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웠느니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천국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서 그는 성부 하나님과 경쟁하여 사람의 숭배를 위해 입찰하는 그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숭배하거나 마귀를 숭배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한다고 명백히 선언하십니다. 바울은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아니면, 사탄을 경배하고 있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사탄숭배의 정도를 깨달을 때 우리의 생각(mind)은 비틀거립니다(이 나라와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음으로 사탄 숭배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는 말임).
<귀신
숭배>: DEMON
WORSHIP:
오늘날 사탄의 제단, 댄스 홀의 제단, 악명 높은 집의 제단, 금의 신의 제단, 인간과 날마다 니코틴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제단은 우리를 전율케 합니다. 인도, 아프리카, 중국에서만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는 나라는 모두 마귀의 신봉자라는 것이 불행한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이 진리의 또 다른 국면을 우리 생각(minds)에 놀랍도록 생생하게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두 아버지, 즉 그의 아버지와 유대인의 영적 아버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화를 내며 매우 불친절한 말을 하였는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리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곳에 서지 못하나니 그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 경험의 가장 엄숙한 사실 중 하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죄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마귀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는 본질상(by nature) 진노의 자녀"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사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나타나느니라"고 말합니다. 인간 역사의 동이 틀 때, 인간은 사탄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품은 마귀에 의해 그의 영(spirit)안으로 불어넣어졌고, 사람은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마귀의 권리(power)에 대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설명입니다. 사탄은 살인자이자 거짓말쟁이로 선언되었습니다. 인류(human race)의 두드러진 두가지 특성은 거짓말(lying)과 살인(murder)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그것을 부인하고, 우리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속임수(deception)와 살인이 인류의 주요 특징이라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미워하는 사람을 살인자로 묘사합니다. 증오(Hatred: 미움)와 복수는 모든 위대한 소설과 드라마에서 신격화됩니다. 사탄은 이 세상 임금(the prince), 신(the god), 영적 아버지(spiritual father)일 뿐만 아니라 바울은 또한, 우리에게,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그가 죽음의 능력(power) 또는 죽음의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6:18에서 자신의 사명(commission)은, 가서, "사단의 진짜(true) 권세"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는(deliver)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온 세상이 악한 자의 품 안에 있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불쾌한 것입니다; 아무도 과감히 그것들을 기록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의무가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것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할 것입니다(사람들은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면, 사탄에 관해 잘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
<사람의
상태>: MAN'S
CONDITION:
인간의
상태를
한
마디로
요약해
봅시다. 첫째, 그는
필멸(mortal)의
존재, 마귀의
신하(subject)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귀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불행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적으로
만드는
성품에
참여하는
자이고, 그의
반역
이후로
그는
피
흘리는
희생,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장, 또는
꿈이나
환상이나
천사의
방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He
is a partaker of a nature that makes him an enemy of God, and since his treason
he has had no approach to God except over a bleeding sacrifice, through a
God-appointed priesthood, or by dreams, or visions, or angelic
visitations). 그의 생각(mind)은
마귀에
의해
블라인드(의식이 없는 상태) 되었습니다. 그의
성품은
하나님과
원수이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멀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경우(case: 사건)를
요약합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언약의
요구
없이; 하나님이
없이; 소망이
없이; 그리고
사탄의
손에
있는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님께
합법적
접근
없이; 기도에
있어서
법적
권리
없이는
그의
자신의
반역에
의해
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범죄자입니다.
<질문>: Questions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어떤
존재를
창조하셨습니까?
2. 어떤
성경구절이
아담이
가졌던
생각(mind)의
유형을
알려
줍니까?
3. 하나님은
아담에게
어떤
지배권(dominion)을
주셨습니까?
(성경구절을
주십시오).
4. 인간의
가장
신성한
책임은
무엇이었습니까?
5. 인간의
죄의
본질(nature: 성질)은
무엇이었습니까?
6. 피조물과
인류에
대해
인간의
반역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7. 신약성경에서
어떤
사건이
아담에
의해서
사탄에게
주어진
사탄의
법적
지배권을
드러냈습니까?
3장. 죽음의
권세(통치: 지배): THE DOMINION OF DEATH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여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미스터리한
책입니다. 그러면
미스터리가
중단이
되고
메시지가
됩니다. 성경을
여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두
단어가
같은
열쇠
고리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강력한
두
단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일관된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죄는
구속의
이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
원인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며, 우리가
그
기본
원인을
이해할
때까지
인간의
상태나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공급을
지능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시대에
미스터리였습니다. 과학은
그
존재에
침묵하며
설명을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철학은
인간의
이
두려운
적을
만날
때
시적으로
변합니다. 신학은
그것을
설명하려고
할
때
일반론만을
다루었습니다. 그
블러드하운드(집요한 추적자) 같은
적은
인간의
요람에서
무서운
일을
시작했고, 수세기의
흐름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일부도
아니고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일부도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의
적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의 영이다>: MAN IS A SPIRIT
죽음의
본성을
이해하기
전에
잠시
인간의
본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이고
혼을
소유하고
있으며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혼과
영이
그의
인격(personality)을
구성합니다. 이
영혼
위에는
그
자신, 영이
있습니다. 이것(영)이 실재 사람(the
real Man)입니다. 이
영은
혼을
통해
작동하고, 그 혼은 차례대로 육체적인
몸을
통해
작동합니다. 그
사람(the
Man: 영)과 그의 영혼은 몸 안에 삽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영)과
그의
영혼은
그
몸을
떠나
그들의
집(home)으로
갑니다. 인간이
육체적
존재
대신에
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실재
세계의
파워들(Powers: 권력자들)은
영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사람은
영입니다. 사탄은
영입니다(God
is a Spirit. Man is a spirit. Satan is a spirit).(주의: 하나님은 창조주의 영이지만, 나머지는 피조물의 영이다).
<죽음의
종류들>: KINDS
OF DEATH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죽음이 언급되어 있지만 우리는 영적인(SPIRITUAL) 죽음, 육체적인(PHYSICAL) 죽음, 영원한(ETERNAL) 죽음(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함)의 세 가지 죽음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진정한 죽음은 우리의 몸(BODY)이 아니라 우리의 영(SPIRIT)에 관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그 부모의 나타남에 불과합니다(이 죽음은 우리 부모님들의 죽음으로 알 수 있다). "둘째 사망"은 죽음의 최종 결과, 즉,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집(HOME)입니다. 이 글의 독자는 육체적 죽음과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육체적인 몸의 해체(DISSOLUTION)입니다. 욥기 18장 13절에서 그것은 "사망의 장자(the first-born of Death)"라고 불립니다. 즉, 최초의 죽음(primal Death)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이 먼저 지구에 왔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물리적 죽음으로 나타납니다(영적 죽음의 결과로서 육체적 죽음이 나타난다는 말임). 육체적 죽음은 바울에 의해서, "죄와 사망의 법" 이라고 불린, 인간 내부에서 작용하는 법의 나타남일 뿐입니다 (The Physical Death is but a manifestation of a law that is at work within the human, called by Paul "The Law of Sin and of Death”). 그러나 영적 죽음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생명(Life)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생명에는 식물의 생명(Vegetable Life), 동물의 생명(Animal Life), 인간의 생명(Human Life), 영적 생명(Spiritual Life), 또는 영생(Eternal Life)의 네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26에서 모든 생명이 하나님을 머리로 삼는다(heads up in God)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영원한 것(Eternal)이든 모든 생명의 저자이시며, 각기 다른 왕국들(인간을 포함하여 각기 다른 동식물 세계들을 말함)에 그들의 영역(spheres)에 맞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Life)은 하나님의 성품(the Nature of God)입니다. 생명은 본질(the substance)이며 하나님의 존재(the being)입니다. 하나님은 영(a Spirit)이십니다. 결과적으로 그분의 생명은 영의 생명입니다(His life is Spirit Life). 사탄은 하나의 영이지만 그의 본성(nature)은 하나님의 본성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성품)은 생명(Life)이고 그것의 첫번째 나타남(manifestation)은 사랑입니다.
<사탄의
본성(성질)>: SATAN'S NATURE
사탄의 본성(NATURE: 성질: 성품)은 죽음이고, 그것의 첫번째 나타남(manifestation)은 미움(Hatred: 증오)입니다. 그런데, 영적
죽음(Spiritual
Death)은 생명(Life)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체(substance), 하나의
힘(force), 하나의
사실(fact)이지만, 그
차이점은
그것이
마귀로부터
나오는
반면에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원래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좌(Throne) 옆에
서
있었던
그
영들의
하나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등을
돌렸고
그가
그렇게
했을
때
그의
본성(nature)은
변했습니다. 인간안에
있는
사악하고(evil) 악하고(wicked) 부패한(corrupt) 모든
것의
근원(very
foundation)으로서 기여하는(serve) 것은
그 (사탄의) 성품(Satan’s
Nature)입니다. 우리는, 선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
안에
머리를
두고(head
up) 있다면, 사악하고
나쁘고
부패한
모든
것이
사탄으로부터
나오는
영적
죽음
안에
머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Life)이
성품(Nature)인
것처럼
죽음(death)도
성품(Nature)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사랑(love)과 기쁨(joy)과 평화(peace)가 흐르고 사탄의 성품에서 미움(증오)과, 살인과, 정욕(lust)과, 그리고 세상 안에서 모든 부정하고 악한 힘(force: 세력)이 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생명과 영적인 죽음이라는 두가지 초자연적인 힘(forces: 세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인간 문제의 해결책이 전혀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다면, 즉
만일
그가
마귀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면
우리는
그에게
영생이
필요함을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Eden)에
두셨을
때, 그는
선택과
책임(choice
and responsibility)에 관한 타고난 능력을 가졌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다면
그는
그의
창조주(Creator)의
지시하에
있는
하나의
자동인형(automaton), 기계였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가
그의
발명가에게
가져올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하나님에게
가져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지(volition)의
능력(power)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을
넘어선(beyond) 지식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과거에)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동역자이자
동반자(the
associate and companion)가 되는 존재(being)로 양육되어졌었습니다(brought). 그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정신적(mental), 영적(spiritual) 능력(capacity)을
가리킵니다. 그가 그에게 경고하셨던 우주의 하나님의 통제권(control)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만일 그가 불순종하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즉, 문자적으로, "너는 죽음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이
진술은
사람(Man)이
이중의
죽음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제안합니다. 아담은
대반역을
저질렀던
순간에
그는
영적으로(in
spirit) 죽었지만, 그는
구백
삼십
년
동안
육체적으로는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Man)이 죄를 범했던 순간에 그의 본성(성품)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이
변화는
새로운
탄생(New
Birth: 거듭남)으로 알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성품 안에서 공통점(parallel)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태어날
때
그는
즉각적인
변화를
겪기
때문입니다(사람의 대 반역과 그의 거듭남, 두가지는 결과적으로, 성품이 곧장 변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라는 말). 이것은
사람(Man)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실제 (죄인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합니다. 즉, 그는
마귀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는, 오늘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날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처럼, 사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영적
죽음에 대한
신약의 견해>: THE NEW TESTAMENT VIEW OF
SPIRITUAL DEATH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Therefore, as through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through sin; and so death passed unto all men, for that all sinned).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death: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그림은 닫힌 문 밖에 서 있는 죽음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죄는 그 문을 열어 놓고 죽음이 그 인간에게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육체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4에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모세 직전까지) 통치했던 죽음" 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모세 시대에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죽음의 지배(통치)가 중단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모세 시대에 어떤 것도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이 부분에서 바울은 영적 죽음과 영적 생명을 대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장(로마서 5장)의 나머지 부분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통치하다(reign)"라는 단어는 실제로 "왕(king)으로서 통치했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 시대부터 모세 시대까지 죽음이 인류에 대해 왕으로서 통치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모세 시대에 하나님은 그에게 동물의 피의 속죄(the Atonement of the blood of animals)를 주셨습니다. 피는 생명(Life)을 나타내고 속죄(Atonement)는 덮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대제사장 직분을 통하여 유대 나라와 이방인 세상에, 그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생명의 덮개를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 황제로서의 죽음의 지배(dominion: 통치)가 어떻게 깨뜨려 졌는지(broken) 이해합니다. 아마도 영적 죽음에 관한 가장 생생한 진술은 로마서 5장 17절에 있을 것입니다. 직역하면 "만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다면" (seized the Sovereignty: 주권을 장악한 것)입니다. 여기에 끔찍한 그림이 있습니다. 저기 에덴 동산에서, 죽음이,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주권(Sovereignty), 지배권(Dominion), 피조물(creation)에 대한 왕권(Kingship)을 장악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몰아냈고 그 자신의 황폐의 법칙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21절에서 같은 번역자는 "이는 죄가 사망의 권세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스럽게 진술된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그 주권을 장악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 그것의 지배권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만연해 있는 죄가 인류를 채찍질하고 병들게 하며 이 끔찍한 영적 죽음의 영역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여기서, 전 인류는 잔인한 황제 사탄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현재의 죄의 능력(power)에 대한 유일한 설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죄는 영적 죽음의 결과물입니다. 영적 죽음은 모든 종류의 죄가 자라는 토양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성품인 영적 생명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모든 종류의 선한 행동이 솟아나는 토양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Sin is the outgrowth of Spiritual Death. Spiritual Death is the soil out of which all kinds of sin grow just as Spiritual Life, the Nature of God, coming into Man becomes the soil out of which all kinds of good actions spring).
<영적 죽음의 본질(성격)>: THE NATURE OF SPIRITUAL DEATH
영적
죽음은
마귀의
성품이고
영적
생명은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이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즉, 영적
죽음에서
미움, 질투, 살인이
나오고, 하나님의
성품에서
사랑과
용서와
평화가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안에
죄의
만연함과
그것의
능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입법화할(legislate)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성품(the
Nature of Man)을 바꿀 때까지 죄는 성장할 것이고 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여기
혹은 저기서
멈출
수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다른
곳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the human)의 유일한 소망은 그에게 새로운 성품(Nature)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죽음(spiritual
death)은 범해졌던 모든 죄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 성품(죄의 성품)입니다. 사람은
죄를
범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성품이
그런
종류의
행동(conduct)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죽음은 사람을 필멸자(mortal)로 만들었습니다. 영적 생명(Spiritual Life)만이 그를 불멸(immortal)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탄이
우주의
황제가
되어
그
무시무시한
지옥의
독기, 즉, 영적
죽음을
내보냈던
그
날은
인간에게
슬픈
날이었습니다.
<죽음의
능력>: POWER
OF DEATH
아담(Adam)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하나님 밑의 통치자이고 왕이었었습니다. 해가 뜰 때마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그의 눈을 즐겁게 했지만 이제 황폐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의 통치의 흔적들은 모든 곳에서 나타납니다. 영적 죽음은 모든 동물 세계의 그 성품(the Nature)을 바꾸었고, 증오와 악의(Hatred and malice)의 부조화한 외침이 나무가 우거진 작은 골짜기에서 열린 공터까지 들립니다. 곤충과 짐승의 시체가 햇볕에 썩어 가고 있습니다. 왕관이 벗겨진 피조물(Creation)의 왕인 아담은 사탄의 철제 발뒤꿈치 아래서 기어 다닙니다(grovel). 영적 죽음은 그에게 끔찍한 현실이 됩니다. 그의 첫번째 아들이 두번째 아들을 죽입니다. 그는 반역의 결과를 예리하게 느낍니다. 그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자녀들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작은 손자가 그 가족(the family)에게 태어나고 아담은 그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Enosh)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죽음에 예속된" 또는 "사탄이 다스리는" 입니다. 그의 죄 이후에 인류의 첫 손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이제 마귀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접근할 어떠한 법적 근거가 없이 그 동산에서 쫓겨난 버림받은 무법자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새로운 주인에게만 응답합니다. 이제 우리는 왜 인간이 범법자(transgressor)이상, 즉, 법을 파괴하는 자(law-breaker)이상인지 그 이유를 이해합니다. 사람(Man)은 영적으로 마귀의 자식이며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성품으로부터 취합니다. 이것은 왜 사람이 행위(conduct)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This explains why Man cannot be saved by conduct). 만일 그가 구원을 받으려면 누군가가 그의 반역에 관한 형벌을 지불하고(paying the penalty of his treason) 그에게 새로운 성품(giving him a new nature)을 주어야 합니다(비고: 여기서 그 누군가는, 죄가 전혀 없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고 실제로 그가 자신의 정결한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어야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해주셔서 그분을 구원자로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셔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분과 연합할 수 있게 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이셔야만 한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타락한 사람)는 결코 그 상태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결코 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그가 행한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무엇인가(그의 성품이 어떠한가)때문에 길을 잃습니다. 사람(Man)은 새로운 탄생(New Birth),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Life)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으로 죽어있기(spiritually dead) 때문입니다.(비고: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영적
죽음은 보편적입니다>: SPIRITUAL DEATH IS UNIVERSAL
“그(그리스도)가 이 산에서 만민을 덮는 덮개의 면과 열방위에 퍼져있는 베일을 파괴할 것이다; 그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자기 백성의 능욕을 온 땅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7-8). 모든 민족을 덮는 이 덮개; 이 베일은 영적 죽음의 베일입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모든 민족을 덮는 휘장이며 모든 나라위에 퍼진 휘장이라고 여기에서 말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선언합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은 "흑암에 앉은 민족들이 빛을 볼 것이고 사망의 그늘에 앉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로마서 3장 9,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성경에서 인류는 보편적으로 사탄의 지배 아래 있고 그들 모두가 사탄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접근할 법적 권리가 없으며 사탄은 이제 그들의 신이자 통치자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25절에서 예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사망의 가족에서 생명의 가족으로 나올 수 있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탕자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이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이다" 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나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너희도 알거니와 살인한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나니." 여기서 우리는 죽음과 생명의 대조를 가집니다. 그것은 마귀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의 대조입니다. 하나는 증오로, 다른 하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또 (그는) 너희의 허물(trespasses)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너희가 전에는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생각(mind)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으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1-5). 성경의 이 부분을 비판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둘째, 우리는 공중의 세력을 잡은 자(the prince of the powers of the air)를 따라 행했습니다. 셋째, 이 권세 잡은 자는, 마치 성령님이 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처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넷째, 우리 모두는 한때 육신(flesh)의 정욕을 따라 살았고 본질(nature: 성품)상 진노(wrath)의 자녀였습니다. 다섯째,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 말을 골로새서 2장 13절과 함께 보십시오: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이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람은 공중 권세 잡은 자(prince)의 지배 아래에서 영적으로 죽어 있고, 이 영은 지금 이 자(prince)의 계획과 목적을 수행하는 사람의 생명을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앞선 주장을 입증합니다. 보편적인 모든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하고, 새로운 탄생은 하나님의 생명 또는 성품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이 성품을 받을 때 형제를 사랑하고 이 성품을 받지 않는 자는 그의 형제를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대조>: THE CONTRAST
여기서 다시 죽음과 삶은 대조됩니다. 로마서 8:1-14에서 바울은 육신(flesh)와 영(spirit), 생명과 죽음을 대조합니다.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5장에서 언급된 영적 사망의 영역에서 오늘날 작용하는 법이며, 바울은 거듭난 이래로 이전 통치자의 지배권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육신(flesh: 헬라어, 사르크스)이라는 용어는 그가 살아나기 전, 즉 거듭나기 전의 사람(Man)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와 관련하여(즉), 헬라어 "사르크스(flesh: 육신)"는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을 때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6절에 “육신(flesh)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spirit)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 사망의 영역에 있는 자연인의 생각이고, 그는 7절에서, "이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영적 죽음의 영역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적대자입니다. 그는 대학교수일 수 있습니다. 그는 교육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위로부터 나지 아니했다면, 그는 성품상 하나님의 원수요 하나님의 법의 신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자에 대해 “만일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안에 있나니” 라고 말합니다(롬 8:9 참조). 다시 말해, 당신이 거듭나서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생명과 성령의 권세로 넘어갔다면, "당신은 더 이상 육신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감각들(오감)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로마서 7장 끝에서 바울의 감상적인 외침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body: 헬라어, 소마)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런 다음 그는 ”그러나 나는 나의 구원을 찾으신(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외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었고 마귀의 자식이었을 때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주의: 이 말은 수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신자가 거듭난 이후에 경험하게 되는, 육신과의 갈등을 말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임). 그러나, 그는 그의 속박과 구원의 특권에 대해 성령에 의해 깨어나서 말하고 있었습니다(Paul was speaking awakened by the Spirit to his bondage and also to the privilege of deliverance).
<그
사건 요약>: SUMMING UP THE CASE
이제
결론적으로
우리가
찾은
것을
봅시다. 첫째, 영적
죽음은
마귀의
성품입니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해
사탄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사탄과의
이
연합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넷째, 인간은
이제
하나님께
호소하거나
접근할
법적
근거가
없는
무법자입니다. 다섯째,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르게
서
있으려면, 누군가는
그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지불하고
그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어야
합니다. 여섯째, 교육도
문화도
그의
성품을
바꿀
수
없습니다. 새로운
탄생(거듭남)은
사람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질문>: Questions
1. 성경을
여는
두
단어는
무엇입니까?
2. 세
종류의
죽음의
이름을
말하고
설명하십시오.
3.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4. 로마서 5:12을
설명하십시오.
5. 영적
사망의
통치에
관해
토론하십시오.
생명(Life)의
전체적인
그림은
사색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생명은
우리가
너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좌우됩니다(우리가 생명을 잘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잘 모른다는 말임). 만일
우리가
그의
생명이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는
끔찍한
고통과
비참함을
그
사람의
시야에
분명히
가져온다면
그는
공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그 만큼 생명의 문제는 심각하다는 말). 그리고
만일
우리가
병원, 의무실, 외과
수술실을
통하여, 감옥, 고문실, 노예
사육장, 전쟁터와
처형장을
통해서
확증된
낙관주의자를
실행해야만
했다면; 만일, 우리가
차가운
호기심의
시선에서
숨어있는
비참함의
모든
어두운
거처를
그에게
공개한다면, 그도
마침내
이
최고의
모든
세상의
성품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단테(Dante)가
우리
현실
세계로
부터가
아니고
어디서부터
그의
지옥의
물질을
취했습니까?"
(악의
통치에
관한
위의
그림은
분명히
성경에서 "사탄"이라고
부르는
자의
인간에
대한
주권을
드러냅니다.)
4장. 사탄: SATAN
만일 사탄과 같은 존재가 없다면 여기에서 죄의 능력의 배후에 있는 지능과 조직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사탄으로 인해 죄가 발생되었고, 죄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기에, 죄를 설명할 때에는 반드시 사탄과 연관시켜 설명해야 한다는 말임). 죄의 만연함, 죄의 능력, 죄의 악의는 우리로 하여금 원인을 찾도록 강요합니다. 죄가 인간안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즉, 사람이 본래 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악하게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를 만드실 때, 그 안에 죄의 부분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To say that sin is inherent in man is to accuse God of creating a being in whose nature sin forms a part).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일 사탄과 같은 존재가 없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그 자리, 즉, 죄의 토대를 찾는 것의 어려움이 직면될 것입니다(사탄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죄가 무엇으로부터 기인되었는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말. 즉, 죄의 원인은 분명 사탄일 수 밖에 없다는 말임). 성경(the Scripture)은 명백합니다(explicit).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한 것만큼 사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그가 누구였으며 오늘날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지금의 그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인류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는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의 악의 있는 성품(nature)과 성격(character: 자질)을 말해주고 그의 종말(end)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모든 것이 하나에(하나님께) 있고 악하고 부당하고 파괴적인 모든 것이 다른 하나에(사탄에게) 있습니다.
<사탄의
법적 통치권>: SATAN'S LEGAL DOMINION
인류와 하늘이 직면해야 할 가장 쓰라린 사실 중 하나는 사탄이 인류를 통치할 법적 권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통치권과 권세(dominion and authority)를 주셨습니다. 이 통치권(dominion)은 사탄에 대한 것이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사탄뿐만 아니라 모든 천사도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다음의 권세자(next in authority)였으며 그가 그 광대한 왕국을 사탄의 손에 넘겨주었을 때 그것은 법적 양도였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합법적이어서 하나님은 그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His Beloved Son)을 하늘로부터 보내어 아담의 범죄(transgression)의 형벌을 당하는(suffer the penalty) 것뿐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과 천사들은 사탄을 어떤 인지(deference)를 가지고 대합니다. 그들은 그의 법적 지배권을 인식합니다. 만일, 사탄이 법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탄을 사업에서 몰아내지 않았고 이 땅에서 영원한 감옥으로 몰아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법적 문서인 구속의 계획(The Plan of Redemption)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을 만나 큰 유혹을 받으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는 내게 넘겨준 것이요 또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니; 그런즉 네가 만일 내 앞에 경배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은 사탄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사탄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대담하게 자랑하고 제안한 것은 놀라운 역사의 사실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야 하고 또 인정하시는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그의 손에 맡기신 통치권을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손에 넘길 (도덕적 권리는 아니지만) 법적 권리(right)를 가졌습니다. 사탄의 지배(dominion: 통치권)를 인정하지 않는 어떤 구원의 계획이나 신학 체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통치권이 법적인 통치권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비고: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사탄이 법적인 통치권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은 당연하게 되었다는 말임).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마귀를 폐위시키고, 그를 통치권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마귀의 모든 행동에 대해 필연적으로 유죄가 되기 때문입니다(비고: 하나님은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시지만, 인류의 타락으로 인하여 생겨난 마귀의 법적 통치권을 당장 제거하지 않고, 또, 마귀의 악한 행동을 당장 중단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유죄가 아니라는 말임). 그러나 만일 그의 자유로운 도덕적 대리권(agency: 선택의지)과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법적 권리를 가진 사람(man)이 그 지배권을 그의 원수의 손에 넘긴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지배권 임대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마귀를 폐위시킬(dispose) 권리를 갖지 않습니다.
<그(사탄, 마귀)는 누구인가>: WHO HE IS
이것은 오늘날 지구를 통치하고 있고, 열국의 왕자로 앉아 있고, 인간의 마음(heart)과 생명(life)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고, 우리의 모든 불행과 슬픔의 주인인 존재(Being)에 대한 연구입니다. 질병과 사망의 능력과 지옥 안으로 던질 권세(authority)를 가진 존재, 그는 무저갱(the Abyss)의 천사들의 왕입니다. 그는 지옥의 어둠의 무리를 다스립니다. 그의 주된 욕망(desire)과 계획(design)은 인류를 멸망시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heart)에 슬픔(sorrow)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14:12-15에서 그는 "샛별, 아침의 아들"이라고 불리며, 그의 타락은 그가 하늘들을 지배하고 하나님을 쫓아내려는 그의 욕망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방 끝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가리라 내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 이것은 에스겔 28:11-19과 함께 사탄이 누구인지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에스겔 28장은 먼저 그의 큰 황제인 사탄 아래에서 섬기고 있는 두로의 왕자에 대해 언급됩니다. 사탄은 땅과 땅의 왕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사탄이 그 왕을 통해 그 나라를 다스리는 그림입니다. 12절부터 우리는 그의 참 모습(true light)을 보게 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완전한 인을 봉하였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이 설명은 에스겔 시대에 살았던 어떤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고'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왕의 왕관에 있는 보석들(precious stones)은 그의 직위와 권세의 휘장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보석, 황보석, 다이아몬드, 황옥, 홍마노, 창옥, 사파이어, 에메랄드, 그리고 홍옥과 금"이 그 놀라운 덮개 또는 면류관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네 창조된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워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게 하였도다 네가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발견되었도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묘사하고 있는 존재는 완전함과 지혜를 합친 아름다움에 있어서 완전한 존재이고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이라는 단어는 그가 보좌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악기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그가 하늘의 예배를 인도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위대한 천사 합창단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고 그의 모든 길에서 온전했는데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고 너를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나니 네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네가 네 광채 때문에 네 지혜를 더럽혔도다." 이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권세와 영광과 존귀의 자리를 차지한 하늘에 속한 존재에게만 적용될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를 그분의 면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쫒겨 났을 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능력(ability)이나 총명함, 그리고, 그의 지혜를 전혀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사탄)은 단지 타락했습니다.
<패션 음악>: PASSION
MUSIC
오늘날 음악이 모든 매음굴(brothels), 무도회장, 극장, 오페라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음악이 오늘날 죄의 매력적인 특징들 중 하나라는 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사탄은 하나의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합창단과 오라토리오를 지휘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에서 그는 왕, 곧 무저갱의 사자(천사)라고 불립니다. 그의 히브리 이름은 아바돈(Abaddon)이고 그의 그리스 이름은 아볼루온(Apololyon)입니다. 그는 지옥의 귀신(demon) 무리(군대)의 큰 왕입니다. 그는 오늘날 하나님의 강력한 적입니다. 그는 천사와 인간의 적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의 모든 악을 이끕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질병의 능력(power), 죽음의 능력, 인류에게 전염병(plagues)을 가져오는 능력, 폭풍과 비정상적인 불(fires: 화재들)을 야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성품은 악의적이고 잔인합니다. 그는 분명히 미적인 것(esthetic)과 아름다운 것(beautiful)을 좋아합니다. 그의 타락은 그에게서 그것들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들을 사용하여 사람의 영들을 파괴하고 난파합니다. (마귀는 여전히 미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게 하지만 결국 그들의 영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그것들을 사용한다는 말임).
<정치인들의 왕자>: THE PRINCE OF POLITICIANS
누가복음 4장 3-7절에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가 그를 데리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그에게 보이니 마귀가 가로되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니 이는 이미 (나에게) 넘겨졌음이니라. 내가 누구에게든지 그것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 앞에 경배하면 그것이 네 것이 될 것이요." 여기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지구의 왕국들(kingdoms)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온 인류가 그의 신하들(subjects)임을 인식하십니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사탄이 이 지배권을 획득했던 수단에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통치할 그(마귀)의 권리를 인식하십니다. 왕자로서 그(사탄)는 열국의 정치적 수장(head)입니다. 나는 누구도 이것을 의심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다 동의할 것이라는 말임). 우리가 인류의 역사, 즉, 우리의 도시들의 부패, 우리의 정치 (politics)의 부패, 지구의 큰 나라들의 통치자들의 부패를 볼 때; 우리가 지구의 큰 나라들의 암묵적 인정으로 준-문명(semi-civilized)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들과 학살들(massacres)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탄의 통치(reign)를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인류(불신자들을 말함)의 영적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 그리고 그분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이고 훌륭한 사람들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아비로서 그는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주었습니다. 신으로서 그가 인간의 숭배와 공경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그것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사탄은 오늘날 예수님보다 더 인기가 있습니다(popular). 지옥은 천국보다 더 인기가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보다 넓은 길을 갑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더 마귀를 숭배합니다.
<죽음의
권세>: THE
AUTHORITY OF DEATH
예수님은 누가복음 12:4-5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하는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사탄이 죽음의 권세와 지옥에 던지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십니다(주의: 위 구절은 사탄의 권세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심판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측면에서 말씀하신 것). 히브리서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예수 그리스도)도 이와 같이 혈육에 속하셨으니 이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바울은 사탄이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동일한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권세가 우리 대적의 손에 있다는 것은 끔찍한 사실처럼 보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9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자기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자요 세계 전체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땅은 사탄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그는 귀신들과 나라들을 다스립니다. 스가랴 3:1- 2,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사단에게 이르되 사단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참으로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기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사탄을 직접 꾸짖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꾸짖습니다. 그것은, 사탄은 하늘에 있는 어떤 천사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보다 더 크십니다.
<귀신의
지배>: DEMON
DOMINION
다니엘 10장 13절에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일(21일)동안 나를 막았고 그 대신에 군대의 장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우러 왔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십일일 동안 기도했었는데 왜 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 그가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서 이십 일일 동안 갇혀 있었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천사라는 존재(angel being)의 앞 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니엘에게 가져오기 위해 바벨론으로 가는 천사의 길을 막았던 존재는, 그 페르시아 왕국을 다스리던 한 귀신(demon)이었습니다. 그 천사는 또한 또 다른 선언을 합니다. 그는, 모든 왕국이 한 귀신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것을 가리키면서, 바로 이 동일한 페르시아의 군주와 싸우기 위해 지금 다시 가고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육신(flesh)과 (blood)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을 상대함이라고 선언합니다(엡 6:12, Paul declares that our combat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principalities and powers and world rulers of this darkness). 그는, 다양한 정도의 귀신의 지배(demoniacal dominion)가 있고; 그리고 세상은 왕국들과 국가들과, 공동체들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과; 각각의 위에는 귀신이 흔들고(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나는, 이것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전도 사역에서, 나는 거의 모든 공동체에서 다양한 종류의 귀신(demon)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괴하고 불쾌한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과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그는 인류(온 세상)의 영적 아버지로 불립니다. " 요한일서 5:19, "온 인류가 사탄의 품 안에 있다(온 세상은 악한 자의 통치 하에 있다)." 그는 지구의 나라들에 대한 독특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계시록 12장 11절 대로, 자기의 날이 얼마 못된 줄 앎으로 분을 품고 이미 이 땅에 내려왔다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 같습니다.
<사탄의 성격: 자질>: His CHARACTER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nature)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탄의 성품(nature)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름들(Names)에 의해서 입니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하나님이 주신 이름들을 통한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적 사탄의 성격(character: 자질)을 발견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연구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 악한 자(the Evil One)가 와서 그 마음(heart)안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마 13:19). 여기서 그는 그 땅(the earth)의 그 악한 자라고 불립니다. 같은 장 38-39절입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the tares)는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그 가라지를 심은 그 원수(enemy: 적)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라." 여기서 그는 마귀와 가라지의 아비라고 불립니다. 그(마귀)는 사람의 마음(heart)에 뿌려진 좋은 씨를 도적질할 뿐만 아니라 가라지와 악(wickedness)을 세상안에 뿌립니다. 그의 이름 "마귀(Devil)"는 "고발자(Accuser) ", "비방하는 자(Calumniator) ", “명예훼손 자(Defamer) ", "중상모략 하는 자(Slanderer)"를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그의 성격을 설명하는 조수입니다. "마귀"라는 단어 자체는 이 네 가지 동의어의 모든 의미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발자입니다>: HE
IS THE ACCUSER:
마귀는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형제들을
고소합니다(accuse). 그는
중상모략
하는
자입니다. 그는
교회와
하나님의
성격(Character: 자질)과
예수님의
정직성(완전성)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방하는
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을
대적하여
모욕적인
비난, 사악하고
불결한
고소(accusations)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는
중상모략하는
자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불결한(부정한) 모든
것들을
판매합니다. 그는
분쟁들을
일으킵니다. 씁쓸하고
끔찍한
스캔들이
이
마귀의
기쁨(delight)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멈추고
이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탄도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에게 봉사하거나 사람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neither God nor Satan can minister to
or destroy the human but through the human).
<그(마귀)는 사람을 사용합니다>: HE USES MAN:
사탄(마귀)은 그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 인간의 입술이나 펜을 사용해야만 합니다(이 세상에는 얼마나 수많은 잘못된 진술들이나 잘못된 글들이 난무하는가!). 그(마귀)는 하나의 인간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더럽히거나 파괴하거나 길을 잃게 할 어떤 능력도 갖지 않습니다(He has no power to defile, to destroy, or to lead astray, except as he has a human instrument: 비고: 마귀는 인간을 하나의 주요 도구로 사용하여 사람들을 타락시킨다는 말). 하나님은 하나의 인간 도구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영감을 주고, 높이고, 구원할 어떤 능력도 갖지 않습니다(해석주의: 이 말은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않다거나 사람과 같은 어떤 수단이 없이는 어떤 일을 직접 하실 수 없다는 말이 아님). 인간이, 마귀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마귀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것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1:3에서, 그는 부패시키는 자(the Corrupter)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생각(minds)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 (pure devotion)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여기서 사탄은 부패시키는 자요, 더럽히는 자요, 마음(heart)의 순결함과 미덕을 약탈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항상 청소년들의 교사(instructor)가 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비고: 사탄이 악한 교사의 배후에서 교사의 직분을 이용하여 교사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순진한 학생들을 타락시키기 위함임). 그는 한 소년이나 소녀를 더럽히기(defile) 위해 어떤 사악한 남자나 여자(예, 타락한 교사들)를 사용하고, 그 다음, 순진한 사람들의 생각(minds)을 더럽히기 위해 그 (더렵혀진) 소년이나 소녀를 우리의 공립학교들과 대학들안으로 하나의 선교사로서 보냅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어린 소년 소녀들이 고등학교에 도달하기 전에 얼마나 자주 타락하고 그들의 마음(heart)의 순결을 얼마나 자주 강탈당합니까? 그들에게는 거룩하거나 순수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생명의 거룩한 비밀들은 모두 악한(vile) 대화와 제안들의 오물(filth)과 수렁(mire)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사탄의 더럽힘에 의해 영원히 상처를 입고 우리에게 다시 돌아옵니다(The holy secrets of life are all dragged into the filth and mire of vile conversation and suggestions, and our sweet babies come back to us scarred forever by Satan's defilement). 데살로니가전서 3:5, “이를 인하여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가 헛되게 할까 함이라.” 여기에서 그는 유혹자(Tempter: 미혹자)라는 새로운 가면(guise)을 취합니다. 그는 하와를 그녀의 순결함으로부터 미혹하는 교활한 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처녀 교회가 그녀의 주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으로부터 미혹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마귀는 미혹자라고 불립니다. 우리 영어에서 그처럼 사악한 이름은 없으며,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미덕과 순결을 미혹하는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비열하고 교활하며 잔인한 옛 뱀입니다. 계시록 20장 2절에는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라는 묵상하기 끔찍한 이름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패션 춤>: PASSION
DANCE:
아마도 여기에 있는 모든 이름들의 이름은 "옛 뱀"입니다. "뱀"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매혹자(유혹자)를 의미하며 사탄은 인류의 타락(the Fall) 이후 모든 연령대의 남녀를 참으로 매혹시켰습니다. 그는 몸을 사로잡는 열정적이고 매혹적인 음악으로 우리에게 무도회장을 선사했습니다. 그 음악은, 타락한 사람 안에서 최악인 모든 것들을 휘젓는 열정으로 진동하게 하고 고동치게 하는 음악입니다. 그것은 남해 제도, 쿠바, 그리고 남부의 흑인들로부터 우리에게 수입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불명예스런 집에 있는 소녀들의 90퍼센트가 공공 댄스홀을 통해 거기에 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이 미묘한 열정 음악만큼 남자와 여자를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그들을 정욕의 신에게 열어 던지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탄은 이 미묘하고 위험한 유형의 음악으로 매혹의 최고조에 도착했습니다(이 육적 쾌락의 음악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타락시켰다는 말). 그는 소위 클래식 음악을 통해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도달할 수 있었지만(클래식 음악으로는 소수 사람들만을 타락시킴) 패션 음악은 성품(nature)의 왜곡된 기본 법칙 중 하나를 토대로 합니다. 하지만 댄스홀은 그가 매료시키는 유일한 곳이 아닙니다. 매일 $80,000,000가 거래되는(pass) 카드 테이블(the card table: 놀음하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은 그들의 두뇌를 날려버리고, 여기서 그들은 남자다움과 성격을 바람들(winds)에 날려버리고, 여기서 그들은 사랑과 가정을 값싸게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카드들과 무도장뿐만 아니라 극장과 영화들을 가지고도 매혹되어 있으며, 오늘날 그들(극장, 영화등)은 우리 교회들을 비우고 우리의 학교들에서 학생들을 파멸시키고 나라의 소년기와 소녀기를 파괴하는 매혹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오, 사탄은 미혹자입니다! (Oh, Satan is a fascinator!). 새가 뱀에 의해 미혹된 것처럼 소녀와 소년, 남자와 여자도 오늘날 "오래된 뱀"에 의해 미혹되어 눈을 감고 무감각한 감각으로 그의 턱 속으로 걸어갑니다. 골로새서 1:13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능력(Power of Darkness)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사탄은 "흑암의 능력" 이라고 불립니다. 어두움은 무지(ignorance)를 의미합니다. 무지는 수많은 인류를 속박(bondage)으로 유지시킨 사탄의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그는 쓰라린,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무지로 지구의 위대한 가족의 무리들을 붙잡아(감금)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들에게 빛에 대한 두려움을 주어 그들이 그들을 자유케 할 힘(the force)과 싸우도록 했습니다 (마귀는, 어두움에 갇힌 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는 교회와 전도자들을 오히려 대적하게 했다는 말). 그 빛이 그들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빛과 어둠 사이의 전투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성육신(the Incarnation)의 날들 동안에 어둠은 빛을 이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오, 흑암의 쓰라린 죄들, 셀 수 없는 어둠의 죄들이여! 어둠(Darkness)은 실로 사탄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별들(constellation)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그는 용, 마귀, 증오의 아비, 살인의 아비, 대적, 치명적인 코일이 부서진 옛 뱀이라고 불립니다. 옛 뱀의 죽음의 코일들(coils)은 나라마다, 자랑스러운 도시마다 생명을 짓밟아 왔습니다. 오늘 밤까지 그들(나라와 도시들)의 유일한 기념물은 우리가 그들의 강력한 폐허 더미에서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의 잔해뿐입니다(마귀에 의해 그들이 완전히 폐허 당했슴을 말함).
<사탄의
평판(명성)>: SATAN'S REPUTATION: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 마귀의 정욕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는도다 저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탄에게 부러워할 수 없는 평판을 주십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라 일컬음을 받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그는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불립니다. 아마도 오늘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뺏지(badge)는 거짓말(the lie)입니다(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즉,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거짓말이라는 말임). 인류는 거짓말쟁이들입니다! 거짓말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먹거나 마시거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natural) 것입니다. 거짓말을 극복하는 것은 남녀가 시도했던 가장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거짓말이 그들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라는 말). 우리는 우리의 옷으로 거짓말을 하고, 우리의 외모로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스피치(연설)로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펜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말(words)과 함께, 그리고 말 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사업에서 거짓말을 하고 강단(the pulpits: 설교 강단)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사탄은 참으로 성격들(characters: 자질들)의 살인자입니다(사람을 죽이는 살인자). 그는 가장 악의적인 일련의 조작으로 그의 끔찍한 행적을 은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최악의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다른 명예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계시록에서 온 땅(the whole earth)을 속이는 자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나에게, 마귀와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가장 쓰라린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속였다는 것이고, 사탄에 의해서 바보가 되지 않았거나 속지 않았던 사람은 전혀 살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속아넘어갔다는 말임). 그는 죄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오류(error)를 진리로 보이게 만들었고, 정욕(lust)을 사랑으로 보이게 했고, 범죄(crime)를 미덕으로 보이게 했고, 속임수 (deception)를 좋은 정책(policies)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와 학생들과 청년들을 속입니다. 마귀는, 생명의 전성기에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하나의 인도자를 찾을 때 무덤의 문턱 위에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는 세상으로서, 국가들로서, 도시들로서, 학교들로서, 가정들로서, 그리고 개인들로서 우리를 속였습니다. 사탄은 인류의 천적(Nemesis)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는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의 명수(master stroke)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항하고, 또,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항하여 그(마귀)의 악한 계획을 이루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사람(Man)은 마귀의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속수무책입니다(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사람이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임).
<사탄의
시간 제한>: SATAN'S TIME-LIMIT:
이방인의 때가, 느부갓네살의 통치 곧 이방인의 세계 통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들(Gentile)에 대한 헬라어 단어가 열국(nations)을 의미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1:24에서 예수님이, 성취될 이방인의 때 또는 열국의 때를 말씀하실 때, 그분은 이 제한된 견해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인류(humanity)에 관한 해석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25절에서 같은 것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이 일부 강퍅하게 되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열국의 충만함입니다. 우리는 땅의 나라들이 마귀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예수님과 바울은 분명히 사탄의 통치가 끝날 때를 언급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하셨을 때 우리는 그분이 쫓아내시던 귀신이 한 놀라운 말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9절에서 귀신들이 소리쳤습니다. 다시 계시록 12:12에서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구들과 다른 성구들로부터 우리는 사탄이 자신의 통치가 시간 제한이 있음을 인정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과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에 대한 통치권을 주셨을 때 이 통치권은, 우리의 현대 임대들 중 하나가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담은 어떤 특정한 기간의 햇수 동안 땅에 대해 지배권을 가졌는데, 그 기간이 6000년이 될지 7000년이 될지, 아니면 얼마나 오랫 동안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대반역을 범하고 이 지배권과 권세를 사탄의 손에 넘겼을 때, 사탄이 아담의 리스를 취했고, 결과적으로 사탄의 통치(지배권)는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아담의 통치가 지속했을 동안까지 계속될 것입니다(consequently Satan's dominion will last as long as Adam's would have lasted had he not sinned). 사탄의 통치(지배권)는 주 예수님의 재림(두 번째 강림)에서 끝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통치는 이제 사실상 사탄의 통치입니다. 또는 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이방인들의 때(the Times of the Gentiles)" 또는 열방(the nations)의 때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인류에 대해 통치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쫓겨났던 귀신들(demons)은 자신들의 시간 제한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때가 되기 전에 구덩이(pit)나 무저갱(abyss)안으로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dreaded). 그들은 그분의 공의(justice)에 호소했고(appeal), “주께서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무저갱에 던지러 오셨나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금 인용한 성경 구절에는 사탄이 그의 권세(authority)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큰 분노로 땅에 내려올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마귀의 시대)를 종결지을 것처럼 보이는 대환난에 대한 이유를 제공할 것입니다(That will give a reason likely for The Great Tribulation which ends this dispensation). 사탄은, 그가 인간에 대한 그의 지배권의 시간들이 끝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불못에 최종적으로 던져지기 전에 하나님께 상처주고, 인류를 짓밟기 위해 인류에게 그의 가장 쓰라린 대접을 부을 것입니다(주의: 대접재앙은 사탄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임. 즉, 사탄의 종들인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과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더 이상 핍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내려지는 재앙임). 우리는 오늘날 사탄의 통치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거기에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사탄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입니다. 1) 첫째, 그는 광명(빛)의 천사였고, 천국 예배를 인도하였다. 2) 둘째, 그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었으며 그 보좌 근처에 서 있었다. 3) 셋째,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보좌를 빼앗으려다가 타락했다(fell). 4) 넷째, 그는 아름다움과 지혜에 있어서 완전하였다(perfect). 5) 다섯째, 그는 그의 지혜의 어떤 것도 잃지 않았다. 6) 여섯째, 그의 성품(nature)은 그의 타락으로 인해 변경되었다(changed). 7) 일곱째, 아담은 그에게 우주에 대한 통치권(dominion)을 주었다. 8) 여덟째, 그는 땅(earth)과 사람(불신자)을 다스린다. 9) 아홉째, 그는 폭풍우(storm)과, 전염병(pestilence)과, 전쟁들과, 질병(disease)과, 죽음(death)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power)을 갖고 있다. 10) 열번째, 그는 우리들의 마음(hearts)안에 하나님의 자리를 찾고 있다(빼앗고 있다). 그는 우리의 예배를 원한다(우상숭배). 11) 열한번째, 그는 교회를 고소(accuse)하기 위해 하나님께 접근한다(have access). 12) 열두번째,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결박되어 지옥(Hell)에 던져질 것이다. 13) 열세번째, 그는 그 심판(the Judgment: 예수님의 최종 심판) 때에 "불못(Lake of Fire)"안으로 들어가 그의 무서운(awful) 통치를 끝낸다.
<질문>: Questions
1. 죄의
배후에
있는
지능(intelligence)과
조직(organization)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무엇입니까?
2.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기
전의
그의
위치를
토의하십시오(discuss).
3. 역사의
어떤
사실이
이
세상의
신(god)으로서의
사탄의
통치를
밝혀
줍니까?
4. 성경에서
사탄에게
주어진
이름을
통해
사탄의
성격(character: 자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십시오.
5. 죽음의
능력(power)이
누구의
손
안에
있습니까? 성경
구절을
주십시오.
"죄를 짓는 인간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죽으러 오신, 사랑이 많으시고 온유하시고 동정심이 많으시고 희생적인 구세주 - 그분은
조용히, 의도적으로, 거듭거듭
그의
제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가르쳤고, 그
당시와
그
이후로
교회의
큰
몸(공동체)은
그가
우리에게
미래의
형벌(심판)의
상태가
있고, 그것은
너무나
크고
두려운
일이어서
모든
사람이
두려운
열성을
가지고
그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의도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그것에
대해
추론하지도
않았고, 도덕적
진리의
체계에서
그
위치를
지적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에
철학적
정의를
부여하지도
않았고, 그것에
대한
이의를
고려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어떤
신적
능력
이론과도
조화시키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휘장을
젖히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손을
드셨고, 거기에서
그분의
청중(hearers) 바로
앞에서
장차
임할
보응(심판)의
어두운
장엄함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내가
지옥의
가르침을
의심할
때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을
의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5장, 지옥: HELL
만일, 지옥, 감금 장소, 고칠 수 없는 악인(incorrigibly wicked)을 가두는 감옥이 있다면,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고통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금세기에, 가능한 가장 인간적인 상황에서 감옥은 감옥입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이 자유로운 시대에 지옥의 감옥은 인간에게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옥은 실제이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는 말임). 이 논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악인의 상태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은 악인들이 기소되어 법원이 (그들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까지 갇혀 있는 감옥(JAIL)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신약의 게헨나, 요한계시록에서 불못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불못은 영원(Eternity)의 연방 감옥(the Federal Prison)입니다. 지옥은 단순히 카운티 감옥(County jail)입니다. 아직 아무도 불못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악한 천사들(the wicked angels)과 악한 사람들(wicked men)은 오늘날 모두 지옥(Hell)에 갇혀 있고 악인들의 부활과 심판을 기다리다가 그 후에 연방교도소(불못)로 가게 됩니다. 당신은 천국(Heaven)이 신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주의: 저자의 용어의 사용이 일반적인 사용과 약간 다름을 주의 할 것. 저자는 낙원을 여기서 천국으로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천국은 일반적으로 실제 부활한 신자들이 영원토록 사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것(천국)은 단지, 신자가 그의 불멸의(immortal) 몸을 받을 때 주 예수의 재림과 첫째 부활을 기다리기 위해 몸이 없는 영(the disembodied spirit)이 가는 잠정적인 장소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새 하늘과 새 땅(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토록 불멸의 육체적 몸으로 거할 것입니다. 오늘 죄인이 죽을 때, 그는 그의 영적 형태로 지옥(Hell)에 가서 거기서 두 번째 부활 때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부활의 때에, 그의 옛 몸은 죄와 질병과 부패(타락)로 가득 차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다시 그 안(지옥)에 들어가 하나님의 큰 백보좌 앞에 그 육체적 몸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판관(Judge)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법원의 판결에 따라 두려운 선고가 내려지고 그는 마귀, 거짓 예언자,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의 연방 감옥으로 보내어질 것입니다. 지옥과 불못(Hell and the Lake of Fire)에 대한 이유는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명백합니다.
<영원한
범죄자>: ETERNAL
CRIMINALS:
인간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는 (영원한 존재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부류에 속합니다. 그가 범죄자로 죽으면 그는 영원한 범죄자로 영원에 들어갑니다. 거기에 감옥이 있어야 합니다. 범죄자는 격리되어야만 합니다. 만일, 그들이 영원토록(through Eternity) 무차별적으로 돌아다니도록 허용된다면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문란하게(타락) 만들 것입니다(demoralize). 우리는 사람의 법들을 어기는 현 범죄자들(criminals)을 가두는 감옥들, 주 교도소들, 연방 교도소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국의 법을 어긴 사람들, 영원한 범죄자들인 그들을 가두는 감옥을 갖고 있다면 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데모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사람은 어떤 종류의 지옥과 죽음 이후의 처벌을 위한 감금 장소를 믿고, 이것(지옥)의 증언(testimony)은 법정 밖에서 쉽게 제외되지 않습니다(이 땅에서 지옥에 대해 증언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임). 보편적인 인간의 의식의 증언만큼 배심원과 판사에게 설득력 있는 증언은 없습니다. 이 보편적인 믿음에 대해 사실에 관한 어떤 근거가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원시인들(primitive)은, 선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악한 사람은 감옥에 간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불과 유황 못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 용어가 고통과 감금의 비참함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고 믿습니다.
<감옥은
감옥이다>: A
PRISON IS A PRISON:
그 사실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자유를
상실한
채, 당신의
필멸의(mortal) 날들이
그
벽들
뒤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면서, 연방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하고
큰
야외
활동이
영원히
당신에게
닫혀져
있다는
것을
알고, 더이상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올
수
없슴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의지와
행동의
능력을
잃어버렸고, 그리고, 총을
든
경비원이
철창
앞에서
제복을
입고
콘크리트
복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충분히
미워지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이것이 영원토록 지속된다면,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저는 그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나는
유황의
연기도, 성경에
묘사된
지옥에서
기어다니고, 물고, 타는
벌레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침받을
수
없는
사악한
자들과
영원토록
갇히고, 신성
모독자들과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거짓말쟁이, 도둑들, 그리고, 모든
연령대의
방탕한
여자들과
어울리고, 다시는
아기의
풋풋한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찬양의
찬가나
사랑의
민요를
듣지
못하고, 그리고, 오로지, 쓰라리고, 신랄하고, 무시무시한
신성모독, 혀를
깨물고, 이빨을
갈고, 긴
감금의
고통은
나에게
지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나에게 그것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에게 결코 그것의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소서.
<그
단어의 의미>: MEANING OF THE WORD:
지옥은 히브리어로 스올(Sheol)입니다. 르바임(Rephaim), 그늘(the Shade), 구덩이(the Pit), 가장 낮고 깊은 곳(the Lowest Deeps)과 같은 많은 동의어가 있지만 "스올"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76번 나옵니다. 신약성서의 헬라어 단어는 "하데스(Hades)"입니다. 그리스어에는 같은 장소를 의미하는 여러 동의어가 사용됩니다. 히브리어 단어는 "죽은 자들의 집", "보이지 않는 거처", "형벌의 장소", "가장 낮은 장소 또는 상태"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고침 불가능한 자의 감옥", "처벌 장소"를 의미합니다. 지옥에 대한 이유는 서론에서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Man)은 영원합니다(eternal). 천사들은 영원합니다. 사람들과 천사들이 범죄자(criminals)가 되면 그들은 영원한 범죄자가 됩니다. 사람은 영원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영원한 속박(restraint)을 위한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의 영(a spirit)이고 사람을 위한 하나의 영의 집(a spirit home)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범죄자이고 반역자이기 때문에 감옥은 필수적이고(imperative), 심판(judgment) 후에는 그 연방 감옥이 필수입니다. 지옥은 (본래)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위해 예비되었던 처소들(places)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죄 때문에, 영원의 범죄자들을 위해 감금의 장소를 건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God has been compelled through man's sin to build, in spite of love, a place of confinement for Eternity's criminals). 하나님은 원래 사람이 땅에서 영원히 살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지구는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사람은 영원한 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짓고 필사자(mortal)가 되었을 때, 지옥(Hell)은 그의 감금을 위해 만들어져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사람을 그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작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결코 사람의 마지막 집으로 간주될 수 없고, 사람의 마지막 집은 그가, 감금 상태에 있거나 행복한 자유 안에 있거나 영원히 육체적 몸으로 거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옥과
무덤>: HELL
AND THE GRAVE
지옥과 무덤이 동의어라고 글과 목소리로 부지런히 우리에게 말한 몇몇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 오류(error)에 대한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이 "스올(Sheol)"이라는 단어를 "무덤(Grave)"으로 35회나 잘못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번역했을 때, 지난 세기에 우리가 얻은 히브리어 지식이 없었습니다(그 당시 히브리어를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번역했다는 말임). 우리는 이 번역본에 많은 오류가 있어서 새로운 번역본이 세상에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미국 개정판(the American Revision)을 최고로 여기며, 킹 제임스 버전에 열심 있는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이 미국 개정판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천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또는 영어에서 단어의 사용은 그것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스올(Sheol)"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의 76곳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퀘버(Queber)"라는 단어와 비교하고 싶습니다. 그 단어(퀘버: Queber)는 Grave(무덤) 또는 세펄쳐(Sepulcher: 무덤)를 의미합니다. 이 비교를 통해, 두 단어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쉬울 것입니다.
<중요한
대조>: A
VITAL CONTRAST:
"스올"이라는
단어는
복수형으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오직 단수로 사용되었다는 말).
"퀘버"라는
단어는
복수형으로 29번
사용되었습니다.
"스올"이라는
단어는
결코
지구(the
earth)에 있지 않습니다. "퀘버"는
지구
표면에 32번
위치해
있습니다(지구 위에 있는 무덤들로 사용되었다는 말임). 몸(Bodies)은
사람에
의해
결코 "스올"에
들어가지
않지만, 몸(bodies)은 37 번이나
그의 "퀘버"에
들어갑니다. 어떤
개인도
그
자신의 3개의 "스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개인들은 44번의 "퀘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스올" 안에
넣지
않지만, 사람은
사람을
그의
무덤
또는 "퀘버"에 33번이나
넣습니다. 사람은
결코
하나의 "스올"을
파지
않습니다. 사람은,
"퀘버"를
여섯번
팝니다. 사람은
결코 "스올"을
만지지
않지만, 그러나, 사람이 "퀘버"를
다섯번이나
만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스올"이라는 단어가 결코 무덤(Grave)의 의미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슴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사람에 의해 무덤(Grave)에
놓여집니다. 스올(Sheol)은
결코
우리가
무덤으로
번역하는
단어와
동의어로
사용되지
않고, 그
사용에
의해 "스올"과 "퀘버"는
동일하지
않으며 "스올"이
무덤으로
번역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
미국
개정판의
번역자들은
이것을
보았고, 그
단어를
전혀
번역하는
대신에, 그것을
단순히
번역되지
않은
영어로
두었습니다(스올을 무덤으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스올이라고 표기했다는 말. 스올은 무덤이 아니기 때문임). 무덤(Grave)과
지옥(Hell: 헬라어, 스올)이
동의어로
사용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그
단어들의
사용과
그들의
의미를
모르거나
정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가
무지하다고
느끼는
편을
선호합니다.
<지옥의
성격>: THE
NATURE OF HELL
지옥에 대한 매우 생생한 그림이 이사야서 14장에 나와 있는데, 그곳에서 바벨론의 위대한 황제인 느부갓네살의 죽음과 그가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스올(지옥)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으켰느니라” (이사야 14:9). 사탄은 세상 황제(emperor) 느부갓네살을 위해 큰 환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모든 왕들의 보좌를 높였고 그들은 동방의 영광으로 그들 주변에 모인 관리들과 노예들과 함께 그 보좌들 위에 앉았습니다. 그런 다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인 위대한 느부갓네살이 그 위 세상에서 내려옵니다. 그는 갑자기 그들의 거짓 왕좌에 앉아 있는 이 왕들과 방백들 앞으로 인도됩니다. 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무엇이 당신을 우리만큼 낮게 떨어뜨렸습니까? 당신의 위대함과 당신의 노래하는 사람들의 음악이 지옥에 떨어졌습니까? 당신은 우리만큼 약합니까?" 불쌍한 고통과 무력감으로 가짜 왕좌에 앉아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의 통곡, 왕들과 왕자들, 장군들과 위대한 금융가들의 이 통곡이 귀에 들어옵니다. 그들은, "구더기가 네 밑에 깔려 있고 구더기가 너를 덮고 있다."고 외칩니다. 그들은 불뱀들이 큰 느부갓네살의 영(spirit) 주변을 휘감고 풀며 기어다니고 있다고 외칩니다. 그는 왕국들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기와 함께 그녀의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그는 민족과 민족을 잇따라 짓밟았습니다. 그는 왕들과 왕자들의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고, 그의 고통은 그가 그곳에 보냈던 많은 사람들, 즉, 거기에 모였던 다수에 의해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6장 24절에는 지옥을 "불도 꺼지지 아니하고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리니 이는 모든 육체에게 가증한 것" 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악인의 부활은 수치와 멸시의 부활이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25:41, 46에 따르면, “그것은 마귀와 반역한 천사들을 위해 예비되었던 영원한 불, 저주받은 자의 집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곳은 사악한 인간의 감옥이고 집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 또는 제한(constraint)의 장소라고 불립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도 아직 사면을 받지 않았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을지 몰라도, 사면은 결코 그들에게 도달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는, 그것은 구덩이(pit) 또는 형벌의 감옥들(prisons of punishment)로 불리고, 요한계시록 9장 1-2절에서는 그것은 유황불 연기가 있는(fire of sulphuric fumes) 곳, 귀신들(demons)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6:19-31에서 예수님은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지옥(Hell)의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비유(parable)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유들 중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부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인용하고 있고, 지옥의 설명, 고통(torment)의 설명, 즉, 단테(Dante)가 그의 책, 지옥(Inferno)에서, 혹은, 밀턴(Milton)이 그의 책,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언급하는 고통을 능가하는, 의식적으로 알 수 있는 (지옥의) 고통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부활후 승천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아버지의 우편에서 그분의 위치를 보시기까지의 기간 동안, 지하 세계(the Underworld)는 하나의 통과할 수 없는 심연(gulf: 깊은 바다)을 가지고 두부분(compartments)을 서로 분리시킨 상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피의 언약(Covenant), 아브라함의 피의 언약을 신뢰했던 구약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예수님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 건널 수 없는 심연을 가로질러 고침받을 수 없는 악인들(the incorrigibly wicked)이 부활과 심판을 기다리며 감금되어 있습니다(incarcerated).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고, 하늘에 있는 지성소 안으로 그의 피를 벌었고(earned), 그 첫번째 언약하에서 그 범죄자들의 대속 안에서 공의의 요구들을 만족시켰을 때, 그분이 다시 낙원(Paradise)이라 알려진 곳으로 다시 내려 갔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souls)에게 설교했고(preached), 대속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했으며(carried), 그들이 그분(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왜냐하면, 우리가 아는한, 어떤 인간들도 엘리야(Elijah)외에는 천국(Heaven)안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임]은 명백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거기(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 문제(the sin problem)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황소와 염소의 피로 기록된 구속의 약속만 가지고 있었습니다(해석 주의). 예수님은 그 첫 언약(Covenant) 아래 있던 죄인들을 위해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 결과, 부르심을 받았던 그들은 그들의 그 기업의 분깃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더니 나사로라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 대문에 누운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불리려 하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외쳐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나는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옵나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을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그들에게 듣게 하라. 가라사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시되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 16:19-31). 우리는 이 이야기를 순전히 유대인의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오늘날 낙원(paradise)은 없지만 지옥(Hell)은 있습니다. 낙원은 비었고 모든 그것의 주민들(inhabitants)은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주의: 저자는 여기서 낙원이 구약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임시 처소로서, 지하세계의 한 장소였지만 , 예수님의 대속 사건이후로 그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으로 옮겨졌고, 신약의 성도들은 그 낙원이 아니라 곧장 천국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하고 있슴). 이 부자는 지옥(Hell)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세 율법의 근본적인 원리들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지 아니했습니다. 온 율법의 요약은 곧 네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율법을 깨뜨렸던 그는 그것에 대한 형벌을 지불했어야만 합니다. 이제 나는 사람이 지옥에 갈 때 그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차리기를 바랍니다. "그가 음부(Hades)에서 고통 중에 그의 눈을 들었더라." 그가 영혼(soul)의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사람은 하나의 육체적 존재(physical being)가 아니고 주로(primarily: 근본적으로) 하나의 영(a spirit)입니다(비고: 사람은 단순히 육체적 존재가 아니고 영적인 존재라는 말임). 그의 혀는 그 강렬한 열기로 타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불꽃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이것이 순전히 비유적인 언어인지 아닌지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이 사람이 불 꽃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불꽃이 단순히 불타는 양심이었다면(양심이 불타는 상태), 그 때엔, 나에게 문자 그대로 불을 주십시오. "아들아, 기억하라." 그 남자는 기억했습니다. 기억(Memory)은 지옥 안에 삽니다. 두가지가 지옥에서 사람을 괴롭힐 것이고, 그에게 잠을 못 이루는 고통으로 채울 것입니다. 첫째, 그가 하나님과 사람을 대적하여 범했던 죄들; 둘째, 그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그러나, 그는 단호히 천국보다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이고 큰 구렁(the great gulf)이 서로가 건너가지 못하도록 고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번째 유예(probation)가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보내질 정도로 충분히 유죄인 사람은 지옥 안에 남을 만큼 유죄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가장 한심한(pathetic) 일에 도달합니다. "당신은 나사로를 땅에 보내지 아니하시겠나이까 내 형제 다섯이 거기 있노니 그들도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오, 이 가망 없는 요구의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여! 어떤 설교자가 영혼을 지옥의 그 고통으로부터 신선하게 할 것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과 지옥과 그리스도의 고난들에 관한 주제를 그들의 생각으로부터 막을 수 있거나, 혹은, 그들이 그것이 설교되는 것을 듣는 장소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그들이 그 지식의 책임을 면할 것이고 그것 자체로 지옥으로부터 그들의 구원을 증명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비고: 그들은, 그들이 지옥에 관한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이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라는 반문임). 오, 그 위험한 궤변은 얼마나 그릇된 것입니까! 그러나 대답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사람이 여기서 저기로 가면 그들이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랬습니까? 예수님은 지옥의 어두운 지하 감옥과 불 같은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땅으로 올라가 그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를 기울였습니까? 아닙니다, 진실로!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누가
지옥에 가는가>: WHO GOES TO HELL: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베이비들이 그곳(지옥)에 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주의: 그러한 성경 구절이 있는가?). 우리는 비록 우리가 성경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모든 베이비들이 책임질 나이에 이를 때까지 모든 베이비들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근거로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주의: 이 말은 아마도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시편 9편 17절은, “악인들이 스올(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아 하나님을 잊은 열방이 지옥에 던지우고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지옥에 던지우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거나, 그를 구주로 시인하지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 말씀과 차이가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는 사탄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교육 시험도, 자선 시험도, 재정 시험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보호받지(sheltered) 못한 사람은 마귀처럼 반드시 지옥에 갈 것입니다. 사람은 그가 해 온 일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인가에 의해 지옥에 갑니다(Man does not go to Hell because of what he has done, but because of what he is: 비고: 그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여전히 죄인이고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말임). 사람은 순전히 지적인 토대(intellectual grounds)에 따라 지옥에 갑니다. 그가 원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 현대문명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옥에 갑니다. 그리고, 그는 천국보다 지옥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그는 사탄을 섬겨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아버지보다 사탄을 자기 신으로 더 좋아하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죄는 그에게 더 매력적이고 지옥은 (그에게) 천국보다 더 바람직합니다(저자는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고 그들의 성품이 악한지를 말하고 있슴).
<질문>: Questions
1. 지옥과
불못은
동의어입니까? 당신의
대답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십시오.
2.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위한
감금
장소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사용되는
지옥과
무덤이
동의어가
아닌
이유를
보여주십시오.
4. 누가
지옥에
갈
것입니까?
5. 지옥에
보내진
사람은
왜
아무도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고발할
수
없습니까?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중보자를
통해
당신에게
화해자로
제시합니다. 그
복음에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전파됩니다. 그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분은,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그
죄는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입니다. 평강의
왕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의
음성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요약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아니하시고
그들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며,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 존 하우(John Howe).
사람은 오늘날 (오직) 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6장. 사람의 한 중보자의 필요성: MAN'S NEED OF A MEDIATOR
앞 장(5장. 지옥)에서 우리는 사람이 법적으로 보호를 박탈당한 사람(legal outlaw)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접근을 잃어버렸고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첫째,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는 생명이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으며, 사람(man)은 중보자를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그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 외인(stranger)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언약의 요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최초) 그에게 부여하셨던 모든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권리와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지위를 주셨었습니다. 그의 반역으로 그는 이것들을 박탈당했고 이제 그의 지위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사탄이 죽음의 능력를 잡은 세상에서 사람의 위치는 분명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전 장에서 사람이 사탄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된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람은, 정치적으로 사탄의 속박(신하: subject)일 뿐 아니라 그는 사탄과 생명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질(성품)상 진노의 자식", 영적으로 죽은 자, 마귀의 자식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사건(case)은 절대적으로 절망적입니다. 사람은 기도할 근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면 그것은 오직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람의 상태(condition)는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 보편적인 인간 의식은, 인간이 타락한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실 때까지, 어떤 인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피 흘리는 희생제물을 통해서, 꿈으로, 환상으로, 또는 천사의 방문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보편적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법적 관계가 없음을 인정합니다. 모든 나라의 성전들, 제단들, 제사장직들은 죄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죽음과 죽음에 뒤따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설득력 있게 고백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보편적인 사람은 죽음 후에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을 믿습니다. 아마도 그 주제에 관한 이 단계의 증언은 이교도 땅의 검은 절망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제공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Perhaps no more eloquent testimony on this phase of the theme could be offered than the black hopelessness of the heathen lands).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갈등하는 수백만 명의 사제들을 가진 인도(India)는 많은 이교도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어떤 오래된 종교의 어느 것도, 진정한 소망이나 죄 문제의 해결책이나,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관한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상태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뇌졸중(stroke)에 생각(mind)이 휘청거립니다. 죽어가는 불꽃, 떨리는 틀, 말했던 잿빛 입술들.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지구의 절망의 언어; 아픈 마음, 쓰라린 부분, 영혼의 슬픈 게임.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마음은 어둠으로 인해 위축됩니다. 어두워지는 구름. 죄의 두려운 장막이 죄인의 운명과 함께 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인간의 중보자(a Mediator)의 필요! 소망이 없습니다! 죽음의 겨울 폭발; 그의 얼음 키스, 어두운 심연. 그것의 숨결 위에 서리가 있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 죽음은 그 영혼에 관해 종을 울렸습니다(예수님이 죄인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죽으셨고, 죄인들에게 경종을 울렸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으니 소망이 없다는 말임). 끝없는 시대가 굴러가는(지속되는) 동안 예수 안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욥(Job)은 그의 위대한 거장의 시에서 인간의 절망에 대한 장송곡을 매우 생생한 방식으로 모았습니다. 괴테가 게르만 민족의 민속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파우스트에서 우리에게 그것을 준 것처럼, 인류 역사의 다양한 시간에 그의 민족의 목소리가 되는 것은 어떤 선견자나 시인의 특권이었습니다. 욥(Job)은 한 민족의 시인이 아니라 인류의 시인, 그 시대의 시인이고, 그의 주제는 시대의 질문 (question)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겠습니까?"(How can man stand right with God?). 모든 시대의 현자와 철학자들은 이 같은 질문을 한 형태나 다른 형태로 해왔습니다. 당신은 욥기가 성경의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사촌인 야곱이 이집트로 갔을 즈음에 기록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는 부분은 욥 시대에 어떤 주제가 살아 있다면, "사람의 중보자의 필요성" 임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욥기 4장의 12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그의 텐트에 누워 있는 아랍인의 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그 밤은 시원하고 차갑습니다. 하늘은 맑고, 보석과 같은 별들은 한밤중의 공기를 통해 반짝입니다. 그 사람이 텐트 안에 누워 잠을 자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가 환상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가 읽어봅시다(욥 4:12-17):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그 때에 한 영(spirit)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필멸의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 앞에서 깨끗하겠느냐.” 이것은 오래된 문제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생각하는 사람이 직면해 온 영원한 문제입니다. 필멸(mortal)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거나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습니까? 타락한 인간이 그의 창조주 앞에서 순수하겠습니까? 당신은 "필멸(mortal)"이라는 단어가 오직 육체적인 몸에만 적용되고 영(spirit)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히브리어와 헬라어 모두에서 그것은, "죽음에 처한", "연약한," 다른 말로,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subject; 신하; 종)”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대리자(Substitute)가 되기 전까지는 필멸의 존재가 아니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렇습니다: 필멸의 사람이나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이나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 즉 사탄의 신하가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지 않고 서겠습니까? 욥기 9장에는 한 노인(욥)이 임박한 심판에 의해서 그의 모든 기관을 가지고 영원(Eternity)의 문제에 관한 그의 고통스런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은 지금 일반적인 인간의 가장 깊은 영혼의 고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그림을 봅시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인, 천막 안에 묶인 남자는 죽음의 투쟁에서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 두려움을 말하면서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그의 마음(heart)을 엽니다(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마음껏 토로한다는 말임). 그는, "나의 날은 달리는 자보다 빠릅니다. 그들은 도망합니다. 그들은 좋은 것(복)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빠른 배 같이 지나가고,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와 같이 지나갑니다" 라고 부르짖습니다(욥 9:25-26 참조). 이것들은 모두 노인에게 하루, 몇 달, 몇 년이 지나가는 속도를 묘사하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한다면 우리는 급행열차, 질주하는 자동차, 새보다 더 빠르게 태양의 표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돌진하는 비행기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노인들에게 날과 달이 얼마나 빨리 서로에게 녹아드는지를 생생한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합니다: "만일 내가 나의 재난을 잊고 슬픈 표정을 지우고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나는 나의 모든 슬픔이 두렵습니다.” 나는 당신(하나님)이 나를 결백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을 압니다. 나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유죄판결(conviction)이 그의 생각을 끈질기게 사로잡았습니다. 다가오는 심판에 관한 슬픔이 그의 영(spirit)에 대해 먹구름으로 모입니다. 소망의 마지막 태양은 어둠의 저녁에 빠르게 팔리고 있습니다. 한 줄기 빛도 그의 텐트(장막)의 어두움을 뚫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모든 거짓된 소망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와 죄책과 절망과 함께 홀로 있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슬픈 얼굴을 밝히려고 애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나는 내 근심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절망의 어둠입니다. 그것은, "나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라는 완전한 지식의 절망입니다. 그는 그것을 알고 거의 심술궂은 절망 속에서 외칩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하여 헛되이 수고하며 어찌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며 시간을 허비하느냐? 만일 내가 눈물로 내 몸을 씻고 내 손을 이렇게 깨끗하게 하면 그러나 당신이 나를 도랑에 빠뜨리려 한다면 내 옷이 나를 혐오할 것입니다. 여기에 억누를 수 없는 유죄판결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탈출구를 제공해야합니다. 그것의 고통은 마지막 공정한 플레이에서 수년간 억눌린 유죄판결의 분출하는 급류입니다. 어떤 사진입니까! "당신이 나를 구덩이에 던지려니와 내 옷(나의 의: self-righteousness)이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시니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고, 우리가 함께 들어가 심판할 수도 없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필멸의 존재(mortal)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욥처럼 죄의 속박과 죄책감 아래 있지 않습니다(욥 9:31-32 참조). 그런 다음 그는 인간의 입술에서 떨어졌던 가장 슬픈 말을 합니다. "우리 둘 위에 그의 손을 얹을 수 있는 판결자(umpire: 주심)가 우리 사이에 없습니다." (욥 9:33). 즉, 우리 사이에는 하나님과 함께 법적 지위를 가지면서 동시에 인간을 공감하고(sympathize) 이해하며 대표할(represent) 수 있는 중재자(Mediator)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재자를 구하는 욥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욥만의 외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욥은 시대의 외침을 모아 한번의 희망 없는 흐느낌으로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비참하게 말합니까: "그가 그의 지팡이(그의 법)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두려움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 내가 그와 대면하여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없나이다" (욥 9:34-35). 욥은 사람에게 중보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즉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의로우며 여자에게서 난 자 보다 깨끗하겠느냐?” "보라 달도 빛이 없고 별들도 그의 보시기에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사람은 벌레 같은 것이로다 사람의 아들은 구더기니라" (욥기 25:4-6). 이것은 거의 신약성경처럼 들립니다: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리요?" 저자는 여기서 그의 생각 앞에 이브(하와)를 통한 인간의 타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순수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는 창조물을 마귀가 더럽히도록 허락하면서 마귀의 손에 그것을 넘긴 아담의 반역을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인간을 벌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깊이를 보여 주십니다. 구더기(Worm)는 옛 뱀인 사탄을 가리키고 여기서 구더기 같은 인간은 영적으로 마귀의 자식이며, 전혀 희망이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30:21을 읽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들의 통치자는 그들에게서 나고 그들의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내가 그를 가까이 할 것이고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누가 마음이 담대한 자가 되어 나에게 가까이 올 수 있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또는 여백에 "누가 그의 영혼에 내게 접근할 수 있는 보증을 갖고 있는가?" 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권리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음을 인식했고,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죄함이 없이 서실 수 있는 한 분(One Being)이 우리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류의 완전한 절망, 완전한 소망 없슴의 그림을 제공하고 당신에게 표시합니다. 그것은 법적 절망입니다. 인간은 법적인 범죄자이고, 만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올바르게 서 있다면(그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은 법적 근거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규모가 큰 종교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오늘날 죄 문제의 해결책과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죄함이 없이 설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 왔고 또 찾고 있습니다. 창세기 3:9-10, 22-24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몸을 숨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사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시고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케 하시니라." 아담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산에서 쫓겨났고 화염검이 문에 놓여 사람이 생명나무에 이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생명나무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역의 정죄 아래 있는 동안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중적인 성품(dual nature)을 가졌을 것입니다. 내가, 영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기 전에, 그리고 그분의 완성된 사역을 근거로 칭의가 오기 전에, 인간이 억지로 하나님의 면전으로 스스로 들어가려고 시도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레위기 10:1-3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게 하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부적절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그 사건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의 부적절한 실상과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다는 말임).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하시지 아니한 다른 불을 그 위에 담고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라.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 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그리고 아론은 잠잠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제사장직의 헌신의 비참한 종결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아론과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은총의 최고점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성막이 세워졌습니다. 쉐키나(Shekinah: 구름)의 임재가 그것을 영광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여호와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그들을 온 땅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표시되었던 일련의 하나님의 개입들 또는 기적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론의 맏아들 곧 제사장의 상속자가 그의 형제와 함께 온 회중 앞에서 홀연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무엇이 그 사건을 만들었습니까? 아침 제사가 끝날 무렵 모세와 아론은 정오 식사를 위해 장막으로 갔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거룩한 언약궤가 놓여 있고 여호와의 임재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회막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허세나 호기심의 영으로 살아 있는 불이 든 향로를 들고 그 위에 향을 붓고 여호와의 초대를 받지 않고 법을 어기고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고, 그도 일 년에 한 번 밖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그 청년들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면서 문지방을 넘어서 죽었습니다. 바라보는 자들로부터 외침이 일어납니다. 사자들은 모세와 아론이 있는 천막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그 무서운 재난을 알립니다. 가엾은 아론은 자신의 죽은 자 앞에서 겁에 질리고, 충격을 받고, 기절합니다. 모세가 그에게 외쳐 가로되 아론아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가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아론은 잠잠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두려운 심판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외에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민수기 16장에서 승인받지 않은, 여호와께 접근하려는 인간의 시도에 대한 또 다른 예를 봅니다. 그것은 고라와 그의 반역에 대한 쓰라린 이야기입니다. 고라와 이스라엘의 한 무리의 지도자들은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게 되었고 그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제사장들 만큼이나 많이 여호와께 접근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세는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그 문제를 시험했습니다. 그는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제사할 준비가 된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타나도록 초대했고, 그들이 오자마자 모세는 백성들에게, 초대받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감히 접근한 이 악한 사람들의 장막(텐트)에서 일어나라고 경고했습니다. 모세가 말을 마치자 땅이 그 입을 열었고 오십 명이 그들의 가족과 함께 산 채로 스올(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찬 채 그 끔찍한 광경으로부터 겁에 질려 달아났습니다. 또 다른 예는 사무엘상 6:19에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언약궤는 엘리(제사장)의 큰 죄 때문에 빼앗겨졌습니다. 그것(언약궤)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가드로 옮겨졌고, 그들이 언약궤를 더럽힌 것 때문에 이교도 도시들에 대한 일련의 심판이 내려진 후에, 그들은 그것을 수레에 싣고 벳세메스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수레를 끄는 소는 도로에서 들판으로 향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언약궤를 보았을 때 그 소식은 산비탈에 빠르게 퍼졌고 주변에서 경건하고 호기심을 가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담한 영(spirit)이 다가와 언약궤의 무거운 덮개를 벗겼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 거룩한 십계명 그릇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전염병이 그들에게 닥쳤고 오만 명이 땅에 쓰러졌습니다. 무서운 두려움과 경악이 백성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슴을 치며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이나 피 흘리는 제사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성격(character: 자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성품(nature)은 동일합니다. 오늘날 사람은 그가 중보자(Mediator)없이는 이스라엘 시대에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하나님께 더 많은 접근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비고: 오늘날의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처럼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한데, 우리는 오직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말임).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산다면, 즉 빚을 갚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실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합니다(비고: 이것은 주로 종교인들이나,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서, 그들은 단지 선하게 살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함). 그리고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들은 나사렛 예수의 공로를 신뢰하는 사람들만큼 그들도 천국에 대한 권리(right)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비고: 그들이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지도 않으면서, 그들도 천국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고 잘못 주장한다는 말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 죄의 짐 아래서 겪은 오랜 고통(agonies), 죄의식으로부터 깨끗해진 양심(conscience)을 갖기 위해 수많은 시도, 그것의 제사장직과 제단, 그것의 희생 제물(sacrifices)과 기도(prayers)에 대해 무지합니다(ignorant);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속고, 이 시대의 신(the god: 마귀)에 의해 정신적으로(mentally) 눈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나라들은 1,900년전 그분의 탄생 이후로 점점 더 침몰하고(sunk) 있습니다.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했고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가져오는 생명을 받았던 사람들만이 과학, 예술, 기계 및 도덕에서 개선을 보였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속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일반) 교육은 사람이 하나님과 바르게 서기에 적합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욥은 오늘날 어떤 위대한 유럽 서번트(Savants)에 의해서도 능가하지 못하는 정신 문화와 지식을 보여줍니다. 다윗(David)은 위대한 교육자 중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지적 발달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지난 천년 동안 열방이 배출한 어떤 작가와도 견줄 수 없는 가장 높은 지적 수준의 순결함과 섬세한 분별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은 모두 "사람은 중보자를 필요로 한다"는 한 가지 위대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오늘날 그것이 학문이라면 학문,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라면 지식은, 모든 사람의 생각들(minds)을 같은 목표로 이끌어야만 합니다: "사람은 중보자를 필요로 합니다." 위로받지 못한 비참한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인류의 절망적인 통곡은 모든 세대에서 들립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 옳게 설 수 있으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순전하리요." 사람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질문>:
1. 에베소서 2:12에
의해
계시된
것처럼
인간의
상태를
토론하십시오.
2. 일반적인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역사는
어떻게
밝혀
줍니까?
3. 욥은
사람에게
중보자가
필요함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4. 인간이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이스라엘의
두가지
경험을
들어
보십시오.
5. 오늘날
사람의
중보자의
필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본,
분과
같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그리스도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분은
선하시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우주로
이루어진(구성된) 그
마음(the
Heart: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
십자가
위에서
부서진
이
부드러운
마음과
같다면, 그분(하나님)은
자격
없이, 예약
없이
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하나님에
관해
더
높은
말을
알지
못합니다. 예일대
교수는 '내
생각에
드는
질문은, 예수의
신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상한
행동처럼
행동하실
것인지' 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사람(예수님)의
관점에서
그(하나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면
그는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thought)을 상실하거나 저하시키지 않고 예수 안에 있는 모든 도덕적 특성을 하나님께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의
관점에서
그분(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을
높입니다. 그분(하나님)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
모든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낮추고
빈약하게
만들었습니다(그들의 생각과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를 잘못 인도했다는 말임). — E.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7장. 예수의
성육신 또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 THE INCARNATION OR THE HUMANITY
AND DEITY OF JESUS:
예수의 인성(Humanity)과 신성(Deity)에 대한 질문은 기독교의 초기의 날들 중에 다른 어떤 질문보다 더 치열하게 논쟁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사색가들, 형이상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의 전쟁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당혹스럽게 하십니다. 자연적인 생각(mind)으로 그분은 신비(mystery)입니다. 인류 안에 그처럼 놀라운 결과들을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거짓말쟁이를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을 일꾼으로, 도둑을 정직한 사람으로 바꾸셨고, 부패한 사회를 깨끗하고 건전하고 안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수천 명의 문인, 만다린, 학교 및 대학의 교장, 정치 지도자, 군 장교, 지방 정부의 수장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있고, 기적은 그들의 삶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1900년대초를 말함). 이 사람 예수 안에는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님으로 관을 씌우는(crown) 순간 우리의 성품(nature)을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자는 경험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 예수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그토록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고, 그것은 당신의 성품을 바꾸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의 행위를 연구할 수 있고 당신의 성품은 그것에 의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영 안에서 행해지는 기적 없이는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달랐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일반적인 법칙을 따라 생성되지(generated) 않았습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또는 실재)가 충만하더라" 라고 말합니다. 성육신(Incarnation)은 창조(Creation: 창조물)의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관점과 사람의 필요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불가피합니다.
<성육신
사실>: AN
INCARNATION FACT: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만일 그의 몸이 자연적인(육신적인) 세대에 의해 잉태되었다면, 성육신(Incarnate)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자연 발생으로 난(육신으로 난) 아이 안에 오셔서 그 아이 안에 거하시고 성육신(Incarnate)이 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영적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우리에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가 자연적인 세대로부터 태어났고 하나님이 그 안에 오셨다면 그는 타락한 영(spirit)이었을 것이고,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마귀에게 복종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육신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육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파괴할 것입니다. 그 씨(Seed)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기원으로부터 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마귀에게 복종합니다. 그(사람)의 씨는 오직 타락한 사람을 생산할 뿐입니다. 성육신하신 분(The Incarnate One)은 죽음이나 마귀의 신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그는 죽음의 대상이 아니셨고 사탄의 신하도 아니었음을 믿습니다. 세상 죄가 십자가에서 그에게 지워지기까지 사망이 그를 주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분은 필멸의(mortal)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불멸(immortal)이 아니었지만 타락 이전의 아담이 완전한 인간이었던 것처럼 그분도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한 아기가 육신으로 출생된 후에) 그 아기의 성품을 변경시킬 수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어린 아이 안에서 성육신이 될 수 있었다면, 그분은 같은 방식으로 전 인류의 성품을 바꾸셨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슴).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사람의 범죄에 대한 형벌이 지불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과 그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구속자(the Redeemer)는 사탄이 그 구속자에 대해 법적 주장이나 권세를 갖지 못했던 분임에 틀림없고, 이것(성육신)은 베들레헴의 그 아기로서 잉태되었고 태어났던 한 구속자(Redeemer)에 의해서만 올 수 있었습니다. 성육신의 가르침은 인간의 욕망이나 전통(human desire or tradition)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모든 부족과 사람들에 의해 믿어져 왔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성육신을 갈망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피를 마시는 것과 식인 풍습, 그의 신들의 칭호를 따라 왕을 명명하는 것, 신들의 제단에 바치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경외심에 의해서 증명됩니다. 성육신은 초자연적이지만 모든 사람들은 초자연적 현상을 믿습니다. 교육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과 믿음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성육신은 신성의 지상 방문과 신성과의 연합에 대한 일반적인 인간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Incarnation is God's answer to the cry of the Universal Man For a visit of Deity to the earth and for a union with Deity). 성육신은 신성이 한 개인 안에서 인성과 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육신은 인간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래로 인간은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꾸준히 점점 더 침몰하고 있고, 유일한 소망은 인간을 그의 잃어버린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신성(Deity)과 인성(Humanity)의 연합(Union)입니다. 성육신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고 성육신 없이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제정신인 모든 사람은 성육신을 원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모든 거짓 종교는 더 높은 도덕적 영적 삶을 자극하기 위해 보편적 성육신 이론을 제공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신지학(Theosophy: 잘못된 이론임)은 모든 사람이 신성(deity)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하려고 노력합니다(그러나, 그들은 틀렸고 잘못하고 있슴). 거의 모든 현대 자유주의 신학 교사들과 설교자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신성의 불꽃(Spark of Divinity)"은 모든 사람 안에 거하고, 새로운 탄생은 단순히 이 신성의 불꽃을 일깨우고 불 속으로 불어 넣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신의 불꽃이나 그 안에 거하는 신의 어떤 부분을 가졌다면, 사람은 이미 성육신한 하나님(God Incarnate)이었습니다(이와같이 그들은 헛된 주장을 함). (그러나) 우리는 이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그것이 거짓임을 실험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그것과 모순됩니다. 우리가 성경의 어느 부분이라도 받아들인다면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은 첫 사람의 창조나 한 아기의 탄생보다 더 믿기도, 더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창조와 인간의 탄생보다 성육신을 더 잘 믿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임).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면,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 안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이었다면 인간과 하나님은 연합될 수 있습니다(If Jesus was Incarnate, Man and God can become united).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몸 안에 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생명과 성품을 우리의 영(spirits)에 나누어 주실(impart) 수 있고 우리는 우리의 이 인간의 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성육신이었다면, 그러면, 불멸성(immortality)은 하나의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을 위해 영생을 받는다면, 우리는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몸이 불멸(immortal)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확신을 갖습니다. 만일 성육신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초자연적입니다. "거듭난" 모든 사람은 하나의 성육신(Incarnation)이고 기독교는 기적입니다. 신자는 나사렛 예수만큼이나 성육신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신비의 유일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성육신을 의심하고자 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 이유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절정에 이르는 생명의 짐과 슬픔과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만듭니다. 그것은 다른 근원(source)에서 올 수 없는 이 인간 문제에 관한 빛을 던져줍니다. 성육신(the Incarnation)은 일반인의 갈망이었고, 그리고, 만일 나사렛 예수가 성육신(Incarnate)이었다면 보편적인 외침은 그 답을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성육신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기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전 존재(Pre-existence)를 증명하고, 모든 연이은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에 대한 기초이자 이유입니다. 인간의 상태는 하나의 성육신(incarnation)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와 함께 신성의 성육신은, 성육신하신 분(the Incarnate One)이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연합하시면서 사람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 그런 토대 위에서 연합된, 신성과 인성의 한 대리자를 제공할 것입니다. 즉, 그는 두 가지를 함께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성(Deity)과 인성(Humanity)이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은 인간 반역의 책임을 짊어지고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실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틈(chasm)에 다리(bridge)를 놓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은 성육신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입니다. 그것은 타락 직후 사탄과의 대화에서 주어집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원수가 되게 하리니 그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문장에서 네가지 놀라운 약속들이나 진술들에 주목합시다. 첫째,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적의를 두겠다." 즉, 사탄과 여자 사이에 적의가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여자의 역사에 의해 증명됩니다. 그녀는 모든 시대에 사탄의 증오와 악의의 특별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녀는 타락의 정면을 짊어졌습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들 중에서 짐을 짊어진 자였습니다. 그녀는 일반적인 소(common cattle)로 사고 팔렸습니다. 오늘날 인도에서 그녀는 공개 시장의 소(cow)만큼 가치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한 나라의 심장부에 도달한 곳에서만 여성이 그녀를 짐승 같은 창조물 위로 들어올릴 수 있는 대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았고, 남자의 정욕의 노리개이며,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자, 고통당하는 자이며, 기독교 국가에서 그녀는 우리 질병의 상속자이자 이혼 법정의 희생자입니다. 의사들은 모든 병원 치료 사례의 95%가 여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 기혼 여성의 22%는 남편이 "야생 귀리"를 심었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고, "야생 귀리를 심는 것"은 사탄의 추수를 위해 우리의 남성(manhood)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너의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둘 것이다": 사탄의 씨는 거듭나지 않은 인류입니다; 여자의 씨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린 시절부터 사탄의 씨에게 쫓겨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교회는 세상의 가장 혹독한 박해와 적의의 대상이었습니다. 둘째, "여자의 씨"라는 놀라운 용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자에게 씨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씨는 사람에게서 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습니까? 여자가 자연적인 세대와 무관하게 아이를 낳을 것이니, 그 아이를 "여자의 씨"라 일컬으리라는 예언입니다.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통틀어 다른 곳에서는 그 용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헤브라이즘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입니다. "여자의 씨"가 있을 것이며 바울은 그 씨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머리입니다. 모든 동양 언어에서 "머리를 부수다"는 것은 통치자의 주권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이제 막 그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통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주권을 깨뜨릴 이 놀라운 여자의 씨가 나올 때까지 중단 없이 이 통치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예언이고 얼마나 분명하게 성취되었는가! 첫째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절정에 달하는 예수의 가혹한 박해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수행하는 교회에 대한 박해입니다. 사탄의 씨에 의한 교회의 오랜 박해는 오늘날 단지 역사의 문제일 뿐입니다. "발뒤꿈치"는 땅에서 걷는 교회입니다. 같은 장 20절에 “그 남자가 그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였음이더라.” 이브(Eve)는 히브리어로 "하와(Hahwah)"인데 문자적으로는 '살아 있는 자', 또는 '생명을 주는 자의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의 아내가 생명의 어머니, 즉 "생명을 주는 자"인 '우리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정녀로부터 탄생>: BORN OF A VIRGIN:
이사야 7:13 14,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데 들으라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에게 징조를 보이시리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아이는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고, "주께서 친히 징조(Sign)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에게 기적과 경이로움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녀를 표시했던 (지정했던) 것처럼 "그 처녀(the virgin)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Immanuel)이라 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처녀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낳을 아들이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또는 성육신(His name Immanuel, God with us, or Incarnation)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1:31-36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네가)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당신이 주목하는 이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됩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출생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러 시대를 내려다보며 다윗 가문의 헬리(Heli)의 딸 마리아(Mary)를 주목했습니다(marked out). 그녀는 다윗의 가족이기도 한 요셉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는, "다윗의 집이여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작은 일이냐 내가 너희에게 표적을 보이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750년 후 베들레헴의 구유 요람(manger cradle)에서 이 놀라운 존재(wonderful being)를 낳을 다윗의 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22에서 하나님은 "여자가 남자(man)를 둘러싸리라", 더 문자적으로는 "여자가 사내아이(man-child)를 둘러싸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성육신하신 분(Incarnate One)은 자연적인 세대(육신의 사람)로부터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한 존재이고 그의 씨는 사탄에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 씨는 사탄의 속박(신하)이 아닌 사람의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이 놀라운 존재는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며 동정녀의 태(womb)는 그가 태어나는 날까지 단순히 그 거룩한 분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사야 42장 6절은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아담이 창조되었습니다. 나머지 인류는 자연적 과정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태어날 이 아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행위에 의해서 "형성"되어야만(formed) 합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분의 탄생에 대해 말합니다.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form or nature)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likeness)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용어들에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항상 하나님의 형상(form or nature: 본체)으로 계셨으나 이제는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적인 세대(natural generation: 육신의 자녀로 출생)와는 다른 하나님의 분리되고 구별된 작업(operation)을 암시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기적을 행하시는 존재(Being)가 있습니다. 먼저 그를 신격(Godhead)으로부터, 즉, 하늘에 있는 신격으로부터 취하여 그를 동정녀의 태에 두어 독특한 개념으로 육신(flesh)과 연합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바울은 말합니다(히브리서 10:5):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임하실 때에 말씀하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였느니라.” 하나님이 한 몸,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위하여 한 특별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선재>: PRE-EXISTENCE OF CHRIST:
시편 107편 20절은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파멸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말씀 (영원한 로고스, 하나님의 표현)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장막을 치셨다(거하셨다)"고 말합니다(요 1:14).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3절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성육신은 성육신하신 이 존재가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이 땅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셨다고 열일곱 번이나 선포됩니다. 요한복음 전체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이전의 존재(previous existence: 선재)를 가졌다는 사실과, 그가 지상을 거니는 동안 다른 세상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이러한 경험에 대해, 그리고 또한 그분이 돌아가서 다시 아버지와 함께 생명을 얻으실 때에 관해, 아버지께 말씀드린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3:16; 8:42; 13:3; 16:28, 30; 17:3-8). 미가서 5장 2절은 예수님의 선재(preexistence: 성육신 전에 미리 존재하심)와 그분의 지상 재림에 한 놀라운 예언적 발언입니다. "유다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여기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 유다 가문에서 나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을 통해 위아래로 여행하셨으며 여러 시대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이 성경의 예언과 성취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성육신은 매우 단순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성육신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고 사탄의 종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그를 구속할 수 없습니다. 성육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humanity), 즉, 자연적인 세대로부터(육신으로) 태어난 사람은 사탄의 권세(Dominion) 아래에 있어서 한 사람(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인류는 태어나자 마자 사탄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성육신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아야만 한다는 말).
<질문>: Questions
1. 이
사람
예수가
다른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가졌던
것과
같지
않게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인간의
필요가
신성의
성육신(the
Incarnation of Deity)을 요구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몸이
자연
세대(육신)로부터
잉태되었다면
성육신하실
수
있었습니까? 당신의
대답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십시오.
4. 성육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욕망이나
전통과
어긋나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십시오.
5. 성육신의
첫
번째
예언은
무엇이었습니까? 다른
여러
말씀을
제공하십시오.
<English Text>:
The Father and His Family by E. W. Kenyon: (click below link to read)
https://drive.google.com/file/d/1M7r0ygBhslHcwYLOw1yuZg31hi0u-1Tf/view?usp=share_link
** References:
If you click the individual link of No. 1 through No.11 below, you can read each of them.
아래의 1번부터 11번까지의 링크를 각각 클릭하시면 글을 하나 하나 읽으실 수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의 실패요인과 해결책" ("Reasons for failure in life of faith and the solutions"):
Please note that the difference between 'Being born of the Holy Spirit' and 'Being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is explained in the middle of this website (in Korean first and in English next). 이 웹사이트의 중간 지점에는 '성령으로 거듭난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의 차이가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한글 먼저, 영어는 다음에 기록됨).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2/05/spirit.html
2) "당신의 영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Listen to your spirit"):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2/06/blog-post.html
3) "예수, 치료자" ("Jesus, the healer"):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2/11/jesus-healer-by-e-w-kenyon.html
4) "예수, 그 놀라운 이름" ("The Wonderful Name of Jesus"):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2/11/4-wonderful-name-of-jesus-by-e-w-kenyon.html
5)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Jesus, the only mediator between God and men"):(This article is on this page.); (이 글은 이 페이지에 나와 있슴.)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2/12/mans-need-of-mediator.html
6) "성경에서 증거하는 우리의 구속" ("Our Redemption testified in the Bible"):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3/01/6-redemption.html
8)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해 질 수 있는가?"(How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by A. W. Tozer: In 한글(Korean) & English; click below link to read it.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3/05/8.html
https://drive.google.com/file/d/1XzL6PNaQoAbuFwFQ9VD7z3HxPoLE92cQ/view?usp=share_link
9)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을 수 있는가? by 케네스 해긴:
[How You Can be Led by the Spirit of God?] by Kenneth E. Hagin:
* 한글 & 영어 (영어 텍스트는 한글 텍스트의 마지막에 놓여 있슴): Korean & English: (English text is placed at the end of Korean text):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please CLICK the link below.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3/05/9.html
10) “하나님을 추구하기” (“The Pursuit of God”) by A. W. Tozer:
한글 & 영어 (영어 텍스트는 한글 텍스트의 마지막에 놓여 있슴: in Korean & English (English text is placed at the end of the Korean text):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Please click read the link below to read the contents:
한글 & 영어 (영어 텍스트는 한글 텍스트의 마지막에 놓여 있슴: in Korean & English (English text is placed at the end of the Korean text):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Please click read the link below to read the contents:
https://spiritruledlife.blogspot.com/2023/12/11-mystery-of-holy-spirit.html
12) (book) “성막으로부터 가르침” (Teaching from the Tabernacle) by C. SUMNER. WE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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